우리가 '대한민국'이라고 부르는 '껍데기 대한민국-코메리카' 사람들은 그 동안 대부분의 사람들이 미국을 구세주로 여기고 독재자 박정희를 한강의 기적을 이룬 영웅으로 어쳐구니 없는 세계관에 갖혀 살고 있었다.
그리고, 심지어 좀 배웠다는 세대.
특히! 베이비붐 세대도 자기네 나라가 독립국가, 아니 자주독립국가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들의 모습을 보면 참 난감하기가 이를 데가 없다.
세상천지에 남의 나라 군대가 떡하니 자기 나라 수도 한 가운데 주둔하고 있는데, 어떻게 자주독립국가인가?
또 이렇게 얘기하면 전세계에 미군이 가지 않는 곳이 없는데, 그럼 그 나라도 독립국가가 아닌거냐? 이런 식으로 따진다!
이럴 때 마다! 나이든 어른들을 함부러 가르칠려고 들수도 없고 참으로 난감하기가 이를데가 없다!
전세계에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고 해서 이 나라처럼 이런 이상한 조약을 맺고 있는 것이 아니다. (솔직히 얘기해서 전세계 유일의 나라 자체가 미군기지에 속하는 국가는 이 나라 밖에 없다. 어느 나라가 이 나라처럼 국가 자체가 미군기지로 되어었는지 있으면! 단, 한 나라라도 찾아봐라?, 그것도 60만 군대가 사실상 미군 예하부대로 있는 나라가 있으면 찾아봐라? 전세계 유일의 미국도 아니고 미군 꼬봉국이자 60만 꼬봉군대가 존재하는 나라 있는지 찾아봐라!)
이런 조약을 맺고 있었던 나라는 엄밀히 말해서 2차대전 패전국 일본, 그리고 미국의 영원한 식민지로 불리던 필리핀, 그리고 이 나라 외에는 없다가 그것도 일본, 필리핀도 우리와는 전혀 다른 내용으로 바꾼지 이미 오래 전이다.
그리고, 이 나라 특히 베이비붐세대의 어른들은 북한이 이미 57년에 자주독립을 이룬 나라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든다.
물론, 우리가 북한이라고 부르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은 여지껏 전세계에서 가장 비정상적인 국가였고 아직도 그렇다!
그렇다고 우리가 정상국가였던 것도 아니다.
우리 역시 저들 보다는 민주화됐지만, 역시 지금 껏 많은 가치관이 전도된 비정상국가였고 현재도 그렇다.
엄밀히 말하자면 우리가 미국의 앞잡이 괴뢰국인 것은 맞지만, 저들이 괴뢰국인 것은 아니다.
비록 지금은 간난하지만, 6.25전쟁 이후에 30년 가까이 남한 보다 저들이 경제적으로 우위에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비록 그 이후에는 미국의 엄청난 지원속에서 이승만, 박정희가 비정상적인 빨대구조를 만들어 놓은 속에서도 미국의 막대한 자금 지원속에 성장한 남한이 80년초에서는 북한을 앞지르기 시작했지만, 적어도 70년대 초반까지는 북이 남한을 앞서 있었던게 사실이다.
*참고로 박정희의 한강의 기적은 그야말로 날조되고 엄청나게 부풀려진 착각이다. 프레이저 보고서 그리고, 각종 객관적인 자료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승만이 남한을 지킬 정통성과 능력이 없어서 미군과 맺은 한미상호방위조약과 작전권을 미군에게 넘긴지 70년만에 거의 처음으로 이 나라의 주권자들이 군사주권반환과 자주독립을 요구했다.
비록! 그 동안 몇 몇 집회가 있긴 했지만, 오늘 이 집회가 갖는 의미는 남다른 것이었다.
그리고, 오늘 만난 음악인과의 대화에서 의외로 이 나라가 사실은 독립국가가 아닌 미국의 앞잡이 국가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상당히 있음을 확인했다.
이런 인식의 확대 그리고 우리의 모습을 바르게 아는 것이 앞으로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정말 기뻤다. 우리의 새내기 주권자들이 드디어 독립을 요구했다.
너무나 기뻐서 술한잔을 걸치고 기타를 쳤다.
꽃다지의 '민들레처럼', 서문탁씨의 '압록강행진곡'을 신이 나서 불렀다.
~ 특별하지 않을지라도 결코 빛나지 않을지라도 흔하고 너른 들풀과 어울어져 거침없이 피어나는 민들레~, ~동포는 기다린다. 어서 가자 고향에~! 등잔 및에 우는 형제가 있다. 원수앞에 밟힌 꽃포기 있다. 동포는 기다린다 어서 가자 조국에~! (노래 가사 중에서)
박정희는 미국의 뜻을 받들어 한국을 친미정권을 표방하면서도 전체주의 반공독재국가로 만들어갔다.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기본개념도 없는 '말도 안되는 헛소리를 정당화하는 말'들 중에 한국은 아직 민주주의를 할 역량이 안되어서 준비가 안되어서라는 말들을 하는 이들이 있다.
흡사 식민지근대화론을 내세웠던 사람들과 비슷하게 보이며, 또 삼일혁명 전후에 변절친일파들이 주장한 민족적 역량을 기른 후에 독립을 하자던 헛소리와 본질적으로 다를게 없다.
이 세상에 민주주의를 할 만한 충분한 준비가 됐다는 기준이 어디 있으며, 도대체 뭘 얼마나 준비해야한다는 말인가?
내 기억으로 30년전에도 뉴스나 방송 그리고 어른들은 우리나라는 독재를 해야돼 민주주하기에는 아직 일러라고 했었다! 그런데, 30년이 지난 지금도 같은 말을 여전히 한다.
도대체, 그 놈의 준비는 언제까지 해야한다는 말인가?
유럽의 프랑스, 영국, 독일 등의 국가와 비교해보면 우리나라가 민주주의 역사가 짧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우리가 민주주의를 하기에는 준비가 부족하다는 말은 인정할수가 없다.
왜냐? 민주주의는 준비가 돼서 하는 것이 아니다. 처음으로 민주주의가 시작된 프랑스, 영국, 미국 어떤 나라도 민주주의를 할 준비가 되어서 민주주의를 시작한 나라는 없다.
민주주의를 뜻하는 영어 Democracy(데모크라시)다. 이 단어에서 볼수있듯이 민주주의는 결국 민중의 요구가 데모를 통해 표현되고 때로는 투쟁으로, 때로는 대화와 타협으로 실현되는 것이 민주주의의 모습이다. 그러므로 민주주의 사회는 다소 시끄러운 것이 정상적인 것이다.
아주 안정적이고 전혀 변화가 없는 체제와 사회 그 것이 전체주의 독재국가가 아닌가? 멀리도 말고 우리의 바로 위 북한을 보자 얼마나 안정적인가? 도무지 외부에서의 압력이나 충격이 아니고서는 변할 수가 없다? 체제의 안정을 얘기하고 민주주의라는 말 앞에 수식어를 붙이는 자들이 하는 짓은 결국 민주주의를 하지 않겠다는 말을 빙빙둘러서하는 변명일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박정희의 공화당정권은 그 시작이 일본 우익세력들과의 야합에서부터 출발했었기에 결국 박정희의 유신체제는 대일본제국의 모습을 그대로 추구한 소일본제국이자 피라미드빨대체제로 독재권력을 구성한 조폭체제국가였다!
그리고, 우리는 아직도 박정희가 이룩해 놓은 소일본제국시대의 피라미드빨대경제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그 피해는 고스라란히 우리 일반 민중들이 떠안고 있다.
여기서 박정희 피라미드 악질 경제 체제의 참모습을 보라!
그리고, 박정희 경제성장은 수많은 어머니와 여인들의 눈물속에서 이뤄졌다.
박정희는 군사쿠데타정권의 정통성을 미국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자국 여인들을 위안부로 미군에 국가적으로 제공하는 짓을 했으며, 한일국교정상화 당시에 해당 국민의 보상금을 국가에서 일괄적으로 받아 버리고는 해당 국민들에게 주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불가역적이란 조항까지 넣어버린 조약에 합의를 함으로서 해당국민들이 대일청구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상황을 만듦으로서 국민의 기본권을 빼앗았다.
강제 징용자, 위안부 할머니, 그리고 월남전파병장병급여까지 박정희의 도적질은 이루 말할수가 없다.그리고, 수많은 여인들을 궁정동 안가에 불러다가 사취한 그야말로 어디 일본 야쿠자 보스들이나 하는 짓을 대통령이라는 자가 하고 있었다. 그때 안가에서 함께 놀던 자들의 대부분이 오늘날 기득권자(매국독재세력들과 그 부역자들)들의 아버지들이자 선대들이다.
대한민국은 박정희의 빨대조폭경제구조를 바르게 이해하고 타파해나갈때에 그들(기득권자, 매국독재세력)만의 대한민국에서 우리들의 대한민국이 될 것이다.
2012년 4월 18일, 한국군 2대 주월사령관이었던 이세호 대장(예)은 서초동 전자랜드 강당에서 있은 안보강연에서 월남파병 해외근무수당에 대해서 언급 하면서 "정부가 미국측으로부터 병장기준 500$을 받아서 1/10인 50$만 지급하고 나머지는 국고에 귀속하여 경부고속도로 건설 등 국가기간사업 확충을 위해 썼다"고 했다.
(3) 농업인 수탈과 무상노동
((1)) 관제조직 : 농협(1961.7.29), 새마을운동(1971~1982)---자주/민주단체 일체 금지
*압도적 세계 최장시간 노동 : 중소기업에서는 하루 12~16시간 노동, 자영업은 더 심각
*대부분 노동자, 자영업자 일 12시간 이상, 월 340시간 이상, 년 4천 시간 이상 노동
((3)) 산업재해 갈수록 악화(세계 최악)
*1964년 1,489명(재해자)-33명(사망자), 1979년 130,307명(재해자)-1,537명(사망자)
*숨긴 재해가 더 많을 것
((4)) 노동계급의 성장, 민주노조운동
*1970년 전태일 분신 이후 파급
*1970년대 도시산업선교회, 가톨릭청년노동
*원풍모방, 동일방직, 청계피복노조, YH무역노조 등 민주노조운동->정권에 큰 타격
(5) 도시빈민 : 생략
2) 재벌의 흡혈
(1) 자본 독점 : 권력->재벌에 집중 배분->재벌독점경제체제 구축
((1)) 미국 원조와 공공차관(~)
((2)) 일본 지원금, 월남 특수 흡입
((3)) 상업 차관
((4)) 관치금융
(2) 중소기업(하청업체) 흡혈 : 갑을관계가 아니라 상하관계---후려치기, 부리기, 기술약탈
(3) 민중 흡혈 : 재벌(자본력)과 권력(공권력-폭력)의 합작
(4) 개발 흡혈 : 악성 토건국가---일본보다 훨씬 심각한 재앙 맞을 것
((1)) 개발 이익 : 정권+재벌+투기꾼
((2)) 지가 폭등과 투기 : 18년 동안 100배 상승, 연평균 33.1% 상승
((3)) 결과 : 자가 거주자 81%(1955)->58.5%(1980)
(5) 인플레 흡혈(유산계급의 무산계급 약탈) : 물가 연평균 16.5% 상승
3. 빨대 박정희 : ~
1) 일제 피해자, 파월 용병의 피의 대가 횡령
2) 협잡, 뒷돈
(1) 1963년, 김종필 증권파동 일으켜 4천만달러 챙긴 것으로 추정
(2) 일본기업으로부터 뒷돈(공화당 창당자금)
3) 리베이트 : 차관 승인, 대출, 각종 인허가---최고 25%(71년 3월, GATX-Fuller)
개별 차관은 정부승인과 지불보증이 필요했기 때문에 차관을 받는 한국의 당사자는 필요한 보증을 얻기 위해 일정한 퍼센트(대개는 10~15%지만 때로는 차입금의 20%)를 지불해야 한다.
(중략) 상납률을 적게 잡아 10%라 하더라도, 이러한 재원들에서 2천 560만 달러의 정치자금을 엄출했다는 것을 의미한다.[1965년과 1966년에 도입을 ~ 달러였다.](보고서, p.59)
4) 정치 헌금(71년 대선의 경우)
(1) 김성곤에게 10만 달러 기부할 한국기업 명단 작성 지시 : 럭키, 현대, 삼성, 쌍용 등
(2) 외국기업에도 요구 : 걸프오일의 경우 1천만 달러 요구에 300만 달러 제공, 칼텍스석유는 100만 달러 제공
5) 기타
(1) 수출입통제-섬유수출 쿼터 조정
(2) 주한미군 군수조달
6) 자금세탁과 관리
196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는, 기본적으로 4개의 정치경제 권력 구심들이 박정희에 의해 균형 잡히고 통제하면서 발전해가는 것으로 보였다. 김종필(민주공화당 의장), 김성곤(민주공화당 재정위원회 위원장), 이후락(대통령 비서실장), 김형욱(한국중앙정보부 부장)이 그들이었다.(프레이저보고서, pp.364~365)
(1) 김종필은 점차 배제, 김성곤은 수표 담당, 김형욱은 현금 수금과 자금세탁 담당, 이후락은 스위스은행 예치와 관리
(2) 김종락(김종필 형)과 장기영(경제기획원장관)도 일정한 역할
(3) 이후락은 스위스계좌 관리인
(4) 1975년 이후에는 박정희가 직접 수금-관리
(5) 박 사살된 후 발견된 청와대 케비넷 9억원은(은마아파트 31~34평형 45채 가격)?
한 네티즌은 20~30대들이 많이 찾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당시(1979) 은마아파트 분양 광고 전단지를 찍은 사진을 올렸다. 평형이 2100만원으로 홍보하고 있다.
7) 흡혈 규모
(1) 1970년 경 이후락, 김성곤, 김형욱이 챙긴 떡고물(재산)이 각 1억 달러(보고서 p.368)
*비고 : 1970년 한국 수출 목표가 10억 달러
(2) 박정희의 1971년 대선자금이 700억원, 당시 예산의 13%(김충식, [남산의 부장들])
*신고된 총 사채액 3,456억 원의 3분의 1에 해당되는 1,137억원이 자기 기업에 사채놀이를 한 기업주들의 사채라는 점이 드러난 것이다. 이것은 성실한 자구 노력이 선행되었다면 초헌법적인 조치 없이도 기업재무구조의 자연스런 개선이 가능했다는 것을 의미한다.([비사 경제기획원 33년 영욕의 한국경제], p.233)
((6)) 사채 피해자 대부분 서민 : 당시 사채업자의 90%가 서민(은행 부실+인플레)---파산, 자살자 속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