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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15일 월요일

이승만의 발언은 친일이 아니라 친'YMCA' 발언이었다

 일부 진영주의 역사 논객 ‘H모모’씨가 이승만이 친일파라는 근거로 주장하는 워싱턴 포스트의 기사 “Korea Being Transformed(변모하는 조선)”에서 이승만이 대략 3년만에  조선이 전통이 지배하던 정체된 국가에서 활기차고 번화한 산업중심 국가로 변모했다고 말한 것은 일제가 통치를 시작한 3년을 언급한 것이 아니라 사실 서울에 YMCA의 신축회관이 1908년에 설립된 3년을 의미한 것이며 자기에게 도움을 준 YMCA에 대해서 감사의 의미를 표현한 것입니다.

‘”The old-time ‘Hermit Kingdom’ is no more,” declared Dr. Syngman Rhee, a native of Korea, who is a YMCA visitor here. “Within the space of three years Korea has been transformed from a slow-going country, where tradition reigned, into a live, bustling center of industrialism,” said Dr. Rhee at the Willard.’

 '“그 옛날 은자의 나라 조선은 더 이상 없다.” 이곳 (워싱턴DC) YMCA를 찾은 이승만 박사가 말했다. 이 박사는 윌라드에서 “대략 3년만에 조선은 전통이 지배하던 정체된 국가에서 활기차고 번화한 산업 중심지로 변모했다”라고 말했다.'



역사 논객 ‘H모모’씨가 언급하지 않은 해당 기사의 다른 부분에는 

‘In all this work of transition the YMCA has had a most important part. Take our building at Seoul for instance—a building, by the way, which was put up by an American, John Wanamaker.’

‘이 모든 변화에 YMCA는 가장 큰 역할을 했다. 서울에 있는 우리 건물만 봐도 그렇다. 이 건물은 미국인 존 워너메이커가 지어준 건물이다.’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역사 논객 ‘H모모’씨처럼 이렇게 이승만이 말한 내용의 앞뒤 맥락을 생략하고 특정한 부분만 떼어내어 특정한 인물을 비난하고 부정적인 평가를 하는 것은 그 얘기를 듣고 있는 사람에게 왜곡된 사실을 주입하는 기만행위입니다.

자료 출처: https://www.chosun.com/national/2024/02/25/Q5NALIB4VFC4HBIKXJZTPLGOMQ/

유튜브 영상




2024년 4월 13일 토요일

정말 이승만이 장인환과 전명운의 변호를 거부했나?

Youtube Shorts 영상

출처: https://youtube.com/shorts/sSe4sxpyJG4?si=B27j1tyEo5-5b6zg


역사논객 H모모씨와 같은 일부 단체나 사람들이 말하고 있는 스티븐슨 암살사건 관련해서 이승만이 변론을 거부했다는 얘기를 들어 보셨을 겁니다.

그렇지만 아닙니다. 심지어 거액의 돈을 요구했다고 하는데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이승만이 장인환과 전명운의 변호를 거부했다? 아닙니다.

당시 한인들이 부탁한 일은 변호가 아니라 통역입니다. 

따라서, 이승만이 거부한 것 또한 변호가 아니라 통역입니다.

변호와 통역은 전혀 다른 역할이고 이승만은 미국 변호사 자격증 자체가 없는 사람입니다.

또 '이승만이 너무나 큰 돈을 요구했다'는 주장은 거짓말입니다. 이승만과 적대적인 관계였다고 할수있는  김원용씨가 재미한인의 역사를 다룬 '재미한인 50년사'에도 금전 요구나 수수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 얘기입니다.

통역을 거부한 이승만은 1908년 8월 12일 한인 신문 '공립신보'에 글을 기고했습니다.

'그 충애지심이 도리어 한국의 장래에 손해할 염려가 없지 않으리로다.'(1908년 8월 12일 '공립신보')

실력 양성과 외교적인 경로를 통한 독립이라는 전략적인 이유에서 이승만은 통역을 거부한 겁니다.

또 '잔인한 민족, 한국인-스티븐슨씨 암살 사건은 돌출 사건이 아냐(Koreans Bloody Race-Attempted Assassination of Mr.Stevens Not an Isolated Case)라는 기사가가 1908년 3월 26일 '뉴욕타임스'에 실리기도 했습니다.

미국과 일본의 관계가 밀월관계인 상황에서 외교 투쟁을 택한 이승만에게 이 재판 간여는 쉽지 않았습니다.

신흥우, 중앙 YMCA청년회 총무 재직 시절

그리고 대신 통역을 맡았던 유학생 신흥우는 이승만의 옥중 동지입니다. 이승만과 배재학당 동문이고 수감된 감옥에서 옥중 학교를 같이 이끌었던 인물입니다.

손세일의 ' 이승만과 김구'21 (월간조선 2003년 4월호, p565)에 따르면 신뢰하는 동지 신흥우에게 통역을 부탁한 겁니다.

이 사실은 류석춘 전 연세대 이승만연구원장이 발굴한 '송철 회고록'(이상수, Key Ad & printing Co., 1985)에 이승만이 과거 옥중동지였던 신흥우에게 통역을 부탁했다고 나와있습니다.(p224, p225) 

사진 출처: 자유일보
출처: https://cdn.jayupress.com/news/photo/202402/26581_34941_2620.jpg


자유일보에 실린 '송철 회고록'의 일부
출처: https://www.jayu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26581

여기 송철 회고록의 일부를 소개한 내용에서도 분명히 이승만은 장인환 의사의 통역으로 열변을 하였으며 나중에 하버드 대학으로 공부를 위해 떠나야 하는 상황에서 자기와 옥중동지였던 신흥우씨에게 통역을 부탁을 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박종인의 땅의 역사] 176. 이승만이 식민 지배를 찬양한 친일파라고? - 역사 강사 황현필씨 주장 검증1

출처: https://youtu.be/J0-KVcMNlZs?si=G7UCiBhnRYMGWOFM


3차대전으로 갈게 뻔한 두만강 프로젝트 단호히 반대한다!

 안녕하세요! '진실의 길'입니다. 지난번 영상을 올리고서도 그래도 한반도가 전쟁터로 변화하는 일은 없기를 기대했었는데 이재명 정권이 들어선지 1년 정도가 지나자 제가 예상했던 대로 미국, 일본, 이스라엘과는 멀어지고 중국, 러시아, 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