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bane 교수님 논문에서 부정선거에 의해 선거결과가 뒤바뀐 것으로 추정되는 지역구에 대해서]
*이 내용을 잘 읽고 이해하신 다음에, 주변에 동일한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잘 설명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이번에 더욱 완전해진 데이터를 가지고 분석을 한 결과, 이번 21대 총선에서는 (적어도 통계 모형 안에서는) 부정선거가 일어났다는 것이 재확인 및 강화되었습니다. 이 때, Mebane 교수님은 이러한 부정선거의 결과로 총 22개의 지역구(민주당이 승리한 지역구 15개, 통합당이 승리한 지역구 7개)에서 당선자가 뒤바뀌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부정투표에 의해 승리가 뒤바뀐 지역구에 통합당이 승리한 지역구가 포함되어 있는 것을 두고, 이병태 교수님과 (이병태 교수님의 말을 그대로 전하고 있는) 정규재 주필님은 (5월 11일자 텐텐뉴스에서 https://youtu.be/OeC2OHR3Jrw?t=874 링크 참조) Mebane 교수님의 통계분석이 엉터리라고 주장하고 계신데, 그에 대해서 해명을 해드리겠습니다.
일단, 미베인 교수님의 통계모형에서는 일차적으로 선거에서 부정투표가 존재했는지의 여부를 탐지합니다. (참고로, 미베인 교수님의 통계모형에서는 투표 분포에서 '다수의 최빈도값(multi modal)'이 존재할 경우 그것을 부정투표로 감지 합니다.) 이때, 이번 21대 총선에서는 미베인 교수님의 통계 모형 상 부정투표에 의한 선거부정이 일어났다는 것이 감지되었고, 전체투표의 약 7.7% (민주당 당선지역 기준 약 9.9%)가 부정투표로 일단 감지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부정투표가 감지되고 나면, Mebane 교수님은 이른바 '반사실적 주론기법(counterfactual method)'을 통해 '만약 선거부정이 없었다면' 투표결과가 어떻게 바뀌었을지 역으로 추정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역추적 작업은 부정투표가 누구한테 유리하게 작용했는지에 대한 가정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때, 미베인 교수님은 기본적으로 "부정투표는 (정당과 상관없이) 지역구 당선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하였다"는 가정을 합니다.
그러한 가정을 적용할 경우, 통합당이 승리한 지역구에서는 부정투표에 통합당 후보가 이득을 봤다고 가정을 하기 때문에, 반사실적 추론 방법에 의한 역추적 작업은 당선된 통합당으로부터 부정투표를 빼앗어서 그것을 민주당 후보에게 줄 경우 결과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추정하게 됩니다. 그 결과, 총 7개의 지역구에서 만약 부정투표가 없었다면 통합당 후보가 아니라 민주당 후보가 승리를 했을 것이라는 추정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만약 부정투표에 의해 오직 하나의 정당만 (이를테면, 오직 민주당 후보만) 이득을 봤다고 가정을 할 경우, 선거부정이 없었을 경우 어떻게 결과가 달라졌을지에 대한 추정은 당연히 달라지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어떠한 가정을 하는 지와는 무관하게, 통계모형 상으로는 부정투표가 분명히 감지되었다는 것이고, 이러한 부정투표가 과연 누구한테 유리하게 작용했는지는 어떤 가정을 받아들이냐에 따라 '반사실적 추론 기법'에 의한 그 추정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부정투표에 의해 당선자가 뒤바뀐 것으로 추정되는 지역구들을 너무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이러한 반사실적 추론 기법에 의한 분석은 다음 두 가지의 시나리오와 양립가능합니다.
시나리오 (1): 만약 "부정투표는 (정당과 상관없이) 지역구 당선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하였다"는 미베인 교수님의 가정이 틀렸다면 (즉, 부정투표가 오직 민주당 후보에게만 유리하게 작용한 것이 사실이라면), 말씀드린 7개 지역구에서는 민주당에게 유리한 부정투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통합당 후보들이 선전하여 승리를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시나리오 (2): 만약 "부정투표는 (정당과 상관없이) 지역구 당선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하였다"는 미베인 교수님의 가정이 맞다면, 말씀드린 7개의 지역구에서는 원래는 민주당이 승리를 했어야 했는데, 부정투표에 의해 통합당 후보들이 승리를 강탈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1)번과 (2)번 시나리오 둘 중에서, 어느 시나리오가 맞을지는 직접 조사를 해봐야 알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반사실적 추론 기법'에 의해 어느 당이 부정투표에 의해 이득을 봤는지에 대한 분석은 선거에서 부정투표가 존재했는지를 탐지하고 난 '이후에'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어느 시나리오가 맞는지와 상관없이, 미베인 교수님의 통계모형에서는 이미 이번 21대 총선에서 부정투표에 의한 선거부정이 감지되었다는 사실 자체는 변화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2)번 시나리오가 통계적 분석만으로는 완전히 배제되지 않기 때문에,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한 철저한 조사는 비단 통합당 뿐만 아니라, 민주당 쪽에서도 해볼 이유가 충분히 있는 것입니다.
원래 웅동중학교는 독립운동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음에도 마치 독립운동과 관련이 있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는 기사를 오마이 뉴스에서 썼다.
계광학교는 원래 아일랜드 인과 지역의 유지들이 만든 학교였으며 초등교육과정이었다.
그리고 일제시대에 일제가 그 교사들을 잡아가면서 폐교됐었고 그 자리에 일제는 그 자리에 소학교를 세웠다.
그리고 웅동중학교는 1946년에 주민들의 모금으로 세워진 고등공민학교였고 1985년에 조국의 아버지 조범현이가 재단이사장이 되기 이전까지는 학교에 빚이 하나도 없는 수준높은 주민자치학교였다.
이런 학교를 조국의 일가 독점하면서 웅동중학교는 재산가치 보다 빚이 더 많은 재정적으로는 이미 사망한 학교가 되었다.
이런 사람이 민정수석이었고 법무부장관이었다는 것이 정말 끔찍하다.
온갖 편법과 부정으로 학교를 독점하고 사유화했으며 학교를 시체로 만들어 놓고서는 마치 자기가 무슨 대단한 선심을 쓰는 것인냥 사회에 환원한다면서 기부천사 코스프레를 하는 꼬라지를 보니! 이런 사람과 그 패거리들이 추진한다는 '검찰개혁, 언론개혁'이라는 것은 사실 '사법장악, 언론장악'인 것이지 절대로 개혁일리가 없다.
바로 이런 모습이 현재 문재인 패거리 정권의 실체적인 모습이다.
이런 자들은 결국 학교를 자기 걸로 사유화했듯이 나라도 사유화하여 죽은 시체로 만든 후에 세계에 환원한다면서 팔아넘길 작자들이다.
진해 웅동중학교가 관심이다. 청와대 조국 민정수석비서관의 어머니(박정숙)가 이사장으로 있는 사립학교로, '세금 체납' 논란 속에 과거 학교 발자취가 알려지면서 관심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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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동학원은 조 수석 임명 뒤, 세금 체납과 법정부담금 미납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됐다. 이와 관련해 조 수석은 사과하기도 했다. 15일 웅동중 조종호 교장은 "법인에서 빠른 시간 안에 해결하겠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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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민정수석은 또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작은 할아버지와 그 형제분들, 사촌 형제들이 그 당시 야학운동을 하면서 그 학교에 몸담았다"라며 "학교가 어려워지자 지역사회에서 저의 선친께 맡아 달라고 요청이 있어 인수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그는 "저의 본적지도 웅동면이고 선산도 여기에 있다"라고 덧붙였다.
이어 "이후 1985년부터 2011년까지 선친께서 자비로 모든 세금을 냈다"라며 "그러다 투병 생활을 하시면서 관리가 잘 안됐던 것 같다. 결국 아무 관리가 안 되는 상황에서 2013년에 돌아가셨고, 학교를 잘 모르시던 어머니가 이사장이 됐지만 세금 낼 생각도 못하셨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웅동중학교의 과거 발자취가 관심이다. 1908년 설립한 '계광학교'가 전신으로, 역사만 100년이 넘는다. 심익순(아일랜드인), 문세균, 배익하, 김창세 등이 설립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 학교 교사와 관계자들은 일제치하에서 진해 웅천지역 일대에서 독립운동을 주도했다. 1919년 4월 3일, 진해 웅동면 웅천3·1만세운동이 일어났는데, 계광학교 교사였던 주기용·배재황·허전·신자균 등이 중심이 되어 준비했고, 당시 만세시위로 교사들이 검거되었다.
다시 민족운동가였던 조원갑·조맹임·조맹규·서도명 등이 후임교사로 왔다. 특히 조맹규·조원갑 교사는 1930년 8월 29일 국치일을 맞아 항일독립정신을 고취하는 격문을 뿌린 일로 구속되었고, 조정호·조명진 교사도 연행되었다.
이로 인해 계광학교는 교사 부족으로 휴학하게 되었고, 일제는 이를 놓치지 않고 휴교를 내렸으며, 결국 폐교까지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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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에 가담했던 계광학교 교사들 속에는 조국 민정수석의 작은 할아버지와 일가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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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1946년 9월 '웅동 고등공민학교'가 설립되어 그해 인가를 받았고, 1952년 웅동중학교로 설립인가를 받았다.
일제치하에서 독립운동을 주도했던 이 학교는 6·25 때는 나라를 구하기 위해 나섰다. 당시 교사 1명과 학생 46명이 학도병으로 출정했고, 이들 가운데 18명이 전사했다.
(1) 통감부 보통학교령(1906.8.):초등과정
((1)) 소학교: 일본인 교육, 공립 초등학교 학교
((2)) 보통학교: 조선인 교육, 사립 초등학교 학교
(2) 개교: 1908년 10월 20일
(3) 교사들의 독립운동
((1)) 독립만세운동(1919.4.3.)
((2)) 격문운동(1930.8~9월): 조맹규 등 격문
(4) 폐교(1930.9.): 격문->투옥->교사 부족
(5) 공립계광보통학교 개교(1932.9.1)
(6) 현재 웅동초등학교(111년)
2) 웅동고등공민학교->웅동중학교
(1) 1946년 9월 2일 : 주민 모금으로 웅동 고등공민학교 설립(12월 10일 인가)
(2) 1952년 4월 18일 : 웅둥중학교 설립인가
(3) 1952년 7월 8일: 교사 이전(소사동->마천동 99번지)
(4) 학교계승
((1)) 초등과정: 사립계광학교(1908~1930)->공립계광보통학교(1932)->웅동초등학교(현재)
((2)) 중등과정: 웅동고등공민학교(1946)->웅동중학교(1952~)
전문가들은 웅동학원의 현 재무상태가 ‘비정상적이고 기형적인 상황이다’고 평가했다. 회계사 20여년 경력의 변호사인 A씨는“(재산 133억원, 부채 200여억원) 이게 사실이면 일반 회사로 치면 완전 자본 잠식에 채무가 크게 초과하는 상황이다”며 “이건 재산을 헌납하는 것이 아니라 내 채무를 면제해 달라는 꼴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회계사 B씨는“법인 재산은 자기 재산이 아니다. 이것을 담보로 돈을 빌렸으면 학교를 위해 써야 하는데, 사적으로 썼다면 배임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