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 그리고 미국 부정선거로 바라본 프리메이슨이 만들었고 딥스테이트가 지배하는 개판나라 USA!
미국의 선거가 끝나고 트럼프가 백악관을 떠난지도 이제 몇 주가 지났다.
한국의 소위 우파 유튜버라고 하는 이들은 아직까지도 희망을 끈을 놓지 못하고 여전히 트럼프가 대통령에 복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그러기는 힘들 것이다.
무엇 보다도 이유가 무엇이 되었든 트럼프 자신이 대통령으로서 가지고 있는 권한을 행사하지 않고 포기했으며, 마지막에 군에 행정명령을 내리면서 떠나는 모습도 내가 보기엔 좋지가 않았다.
그래도 내심 트럼프를 지지하거나 어떤 행동을 하지는 않았지만 트럼프가 했던 대북정책 때문에 최소한 북미간에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에 관한 기대가 있었다.
그래서, 트럼프가 재선되기를 바랬었고 되지 않을까 했었는데 부정선거로 결국 낙마했다.
한국의 415부정선거와 마찬가지로 미국의 부정선거 또한 수많은 증거들이 쏟아졌고 각 주별로 청문회가 있었던 곳도 있었지만 결국은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미국의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 그 어느 기관도 선거부정에 관한 논란에 대하여 제대로 작동한 기관이 없다.
더구나, 1월 6일 의회 난입사건으로 그날 예정됐던 연방의회의 질의 응답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심지어는 미국 민주당이 퇴임을 앞 둔 대통령을 1주일 전에 탄핵을 추진하는 일도 있었으며 아직까지 탄핵심판이 진행중이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그래도 미국이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자라는 인식이 매우 강하다.
그래서 미국에서 415부정선거에 관한 활동을 하는 사람들 중에 거의 대부분은 미국의 부정선거를 보고서는 매우 심한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심지어 미국의 본모습은 자유민주주의라는 가면을 쓴 극소수 자본가 독재국가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나조차 이번의 미국선거는 너무나도 뻔뻔해서 충격적이었다.
미국은 건국을 할때부터 프리메이슨들이 건국했으며 극소수의 산업자본가들이 실질적인 지배를 하고 3권의 관계자들이 그들에 의사에 좌우되는 매우 기형적이고 비정상인 괴물국가다. 과거에 FRB로 불리웠던 FED(미국의 중앙은행)은 극소수의 기업가들이 지분을 나눠가지는 사기업이며 미국이라는 국가의 각 기관은 이 곳으로 달러를 구매한 후에 미국 국민들의 세금으로 원금과 이자를 갚는다.
바로 이런 문제투성이 비정상적인 시스템이 일부 극소수 자본가들이 미국이란 나라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부를 독점할 수 있는 여러 중요 기반 중에 하나다.
그리고, 이들은 1~2차 세계대전을 거쳐 오늘에 이르까지 그 힘을 전세계에 뻐치고 있으며 미국은 원래 이런 개판나라다. 그리고 머지 않은 장래에 그들이 고대하는 신세계질서를 목전에 두고 있다.
미국에서도 전자개표기가 들어오던 그 순간부터 부정선거가 암암리에 이뤄졌을 것이며 아마도 버락 오바마부터 어느 정도 선거부정이 이뤄졌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한국에도 김대중 정부때 전자개표기가 들어왔으며 노무현 정부가 탄생했다.
나도 익히 들어서 전자개표기가 들어오는 순간 그것은 이미 부정선거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며 선거의 공명정대성은 이미 물건너 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충격을 받은 것은 이렇게 까지 대놓고 부정선거를 한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척 봐도 유권자의 수를 훨씬 넘는 득표자수 그리고 특정한 단시간에 수직하는 바이든의 득표 그래프 등 등 너무나도 많은 증거가 일반대중의 눈에 아주 티가 나도록 쏟아졌지만 입법, 사법, 행정부 어느 곳에서도 이것을 바로 잡을려는 제대로 된 행동이 없었다.
지금까지는 그래도 '자유민주주의'라는 허울좋은 가면을 쓰고서 헌법과 법률 지키는 흉내라도 내던 미국의 극소수 엘리트 집단이 이제는 '이따위 가면도 이젠 필요없어!'라고 하며 '미국 대통령이 어디 선거로 뽑히는 줄알아? 미국 대통령은 우리가 결정하는 거야!'라고 하며 가면을 벗으면서 '이게 미국의 모습이야! 그래서 니들이 뭘 어쩔건데!'라고 뻔뻔하게 드리대는 모습이다.
무엇이 그리도 저들을 서둘게 만들고 뻔뻔하게 자기들의 본모습을 드러내게 만들었는지? 여전히 많은 것이 의문스럽지만 이제는 미국의 부정선거에 관한 것은 미국인들이 해결해야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국내에서 미국이 부정선거와 트럼프에 관한 얘기를 일부 유튜버들이 계속하고 이것에 사람들이 계속 매달리는 것은 매우 비생산적인 일이다.
더구나 종교적인 관점에서 자꾸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저들이 부정선거에 관한 얘기를 하는 사람들을 광신도로 모는데 아주 좋은 요소다.
그리고, 종교인들은 제발 예배를 볼려면 광화문 광장이 아니라 교회에서 볼 일이지 왜 자꾸 집회에 와서는 목사가 마이크를 잡고 예배를 보는 것인가? 여러 사람 피해보게 만들지 말고 제발 좀 예배는 교회에서 보고 집회는 그 집회의 본 뜻에 맞는 행동을 했으면 좋겠다.
지난 815 광복절 집회때와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도 집회에서의 종교적인 발언이 문제가 되어서 개신교도들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 가 약 20%가 늘었고 개신교도의 수가 줄었다는 얘기가 있었다.
저들은 기독교 그중에서도 개신교를 특정지어서 타겟으로 삼고있는데 그 목적은 자기들에게 저항을 할만 사람들을 침묵시키기 위함일 것이다. 이것은 개신교도 이건 아니건 간에 무조건 침묵시키기 위해서 그 사람을 특정 종교인으로 몰고 필요하다면 사실을 날조시켜서라도 그 사람을 침묵시키고 매장시키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저들의 의도에 대로 움직이는 것은 스스로 자멸하는 어리석은 짓이다.
코로나19로 인한 과장된 팬데믹으로 소상공인들과 일반시민들의 상황이 극단으로 가고 있는 상황에서 코로나 19의 백신에 대한 좋지 않은 소식 또한 연일 쏟아지고 있어 여러 가지로 마음이 우울하다.
나도 얼마전에 다니는 직장의 권유로 보건소에서 코로나19 검사를 받았다.
장항준 선생님의 권고대로 비타민과 아연이 풍부한 영양제를 하루에 한 알씩 복용해서인지 다행히 음성판정을 받았으며 현재까지 직장 잘 다니고 있다.
그런데, 그 검사결과가 나오는 하루가 얼마나 길게 느껴지던지 마음을 조리면서 기다려야했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래야하는지 말썽 많은 백신을 꼭 맞아야하는지? 그리고 돌연변이가 출연했고 그것도 확산 중이라고 하는데 도대체 방법이 있기는 한지? 또, 이런 조치들을 한다고 해서 이 코로나 상황이 끝이 날수 있는 것인지? 많은 것이 의심스럽다.
아무래도 이 모든 것은 결국 전세계를 통제사회로 가게 만들면서 단일정부를 만들고 미국을 자신이 빨대 꼳고 쪽쪽 빨아먹는 기형적인 괴물국가를 만들었던 것과 만찬가지로 전세계 60억 인구를 상대로 그렇게 만들려는 그들 딥스테이트, 그림자 정부세력 등의 욕망으로 인한 것으로 생각된다.
통일 독일의 과거 청산
Friedrich-Ebert-Stiftung, Korea Office
~전략~
독일정부는 이제까지 나치정권의 피해자에게는 약 1400 억 마르크(일부 강제노동자에
대한 보상금 포함)라는 적지 않은 액수의 보상을 해왔다. 그러나 유독 강제 징용된
외국인 노동자들이 요구하는 체불된 임금과 강제징용에 대한 보상문제에 대해서는
법적 근거가 부재하다는 이유를 들어 이를 거부해오고 있었다. 그래서 외국인
강제노동자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전후 보상에서 누락되어 왔으며, 그리고 예전에는
논의조차 금기시되던 이들에 대한 보상문제가, 특히 통일 이후, 어떻게 정치적인
타결에 이르게 되었는지 살펴보는 것은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이라 하겠다.
이와 같은 독일의 배상 정책에도 불구하고 집시와 동성애자, 탈영병, 강제노동자는 오랫동안 수혜자가 되지 못했다. 1980년대 후반에야 비로소 이들에 대한 학문적 관심이 증대했고 피해 보상에 대한 주장이 제기됐다.
~ 중 략 ~
독일 통일과 냉전 해체 뒤인 1990년대 독일에서는 강제노동자 문제에 대한 정치적 관심이 증대했고 물질적 보상이 요구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이 문제 해결에 결정적 자극을 준 것은 미국 내의 움직임이었다. 미국의 유대인 피해자 단체는 미국 정부의 지원으로 독일 기업들에 집단 보상 소송을 준비했다. 독일 기업들은 그 법적 분쟁을 꺼렸다. 나치 시기 강제노동자에 대한 보상 문제는 곧 독일과 미국뿐 아니라 동유럽에서도 정치적 이슈로 등장했다.
~ 중 략 ~
곧 재단 설립과 활동 방향, 보상의 기준과 규모가 정해졌다. 2001년 6월15일 처음으로 보상금이 지급됐고, 2007년 6월12일 공식적으로 지급 완료가 선언됐다. 230만 명 이상이 보상금 지급 심사를 신청했고 그중 약 165만 명에게 지급 결정이 내려졌다.
독일 연방정부와 기업들은 각각 절반을 부담해 100억마르크(50억유로, 약 7조9700억원)의 기금을 마련했다. 독일 기업들은 납부를 강요받지는 않았지만, 사회적 책임에 근거해 자발적으로 기금을 기부했다. 특히 나치 시기에 아직 존재하지도 않았던 전후 신생 기업들이 기금을 납부하기도 했다. 그 비율이 전체 6544개의 기업 중 약 40%에 달했다. 1970~80년대 이래 본격화된 과거사에 대한 집단적 학습 과정은 기업가와 경영인들에게도 크게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중략~
165만7천 명의 수급권자에게 총 43억1600만유로(약 6조3070억원)가 지급됐다. 그것으로 이제 독일은 나치 범죄에 대한 배상을 매듭지었다. 나치의 강제노동과 관련해서는 어떤 개별적 법적 소송도 더 이상 가능하지 않도록 국제적 합의가 이루어졌다.
~중략~
20세기 전반 나치 시기 강제노동자에 대한 보상을 둘러싼 국제적 논의는 그 세기가 끝나기 며칠 전에 일차 합의에 도달했다. 정치 지도자의 시간이 왔다. 1999년 12월17일 당시 독일 대통령 요하네스 라우는 공식 성명에서 다음과 같이 발표했다.
“재단을 발의한 독일 국가와 기업은 과거의 범죄로 인해 발생한 공동의 책임과 도덕적 의무를 다할 것을 선언합니다. 노예노동과 강제노동은 단지 받아야 할 임금을 뺏긴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납치, 근거지 상실, 권리 박탈 및 잔인한 인권유린을 의미합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돈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님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강제노동자들은 자신들의 고통이 고통으로 인정받기를 원하고 자신들에게 가해진 불의가 불의라고 불리기를 원합니다. 오늘 저는 독일의 지배하에서 노예노동과 강제노동을 수행해야만 했던 모든 사람들을 기억하며 독일 민족의 이름으로 용서를 구합니다.”
(1) 좌우 공존 민주주의 시기
((1)) 일본에 강제저축 통장-명부: 확인 6조원(2012년 현재가)
((2)) 일본 시민운동: 강제동원, 위안부, 한인 원폭 피해자 지원
(2) 코메리카=대한민국: 미국의 반공기지
((1)) 오카모토: 개인청구권 박탈, 뇌물 $6,600만(22%)
((2)) 역대 정권, 일제 식민지배 피해 개인청구권 부정
((3)) 청구권 요구: 빨갱이 취급, 외면-지지자 전무
2) 대한민국 헌법재판소(2011.8.30)
헌법재판소는 지난 2011년 8월 30일 청구인들이 일본국에 대해 가지는 일본군위안부로서의 배상청구권이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이하 '이 사건 협정')'으로 소멸되지 않았으며, 피청구인의 부작위가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중략~
일본국에 의해 광범위하게 자행된 반인도적 범죄행위에 대해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에 대해 가지는 배상청구권은 헌법상 보장되는 재산권일 뿐만 아니라, 무자비하고 지속적으로 침해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신체의 자유를 사후적으로 회복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중략~
이러한 점을 기반으로 헌법재판소는 "기본권 침해 구제의 절박성이 인정되며 이 사건 협정의 체결 경위 및 그 전후의 상황, 일련의 국내외적인 움직임을 종합해 볼 때 구제가능성이 낮다고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국제정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전략적 선택이 요구되는 외교행위의 특성을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피청구인이 부작위의 이유로 내세우는 '소모적인 법적 논쟁으로서의 발전가능성'이나 '외교관계의 불편'이라는 매우 불분명하고 추상적인 사유가 기본권 침해의 중대한 위험에 직면한 청구인들에 대한 구제를 외면하는 타당한 사유라거나 고려돼야 할 국익이라고 보기는 힘들다"고 판단했다.
이에 헌법재판소는 "이 사건 협정 제3조에 의한 분쟁해결 절차로 나아가는 것만이 국가기관의 기본권 기속성에 합당한 재량권 행사라 할 것이고, 피청구인의 부작위로 인해 청구인들에게 중대한 기보권의 침해를 초래했다 할 것이므로 이는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결했다.(대한변협신문, 2013.10.28)
(1) 코메리카=대한미국, 가짜 대한민국
((1)) 박정희 정권 불법 권리박탈: 한일 '합의' 과정에 사전 위임도 사후 동의도 없음
((2)) 역대 정권: 불가침, 불가탈의 개인청구권 멋대로 부정
((3)) 반역: 일본(주권 유린 가해자)에게 면죄부
(2) 아! 대한민국: 헌법재판소 8.30 판결
'대한민국'이 이상적 나라라면, 주권자(위안부)의 기본권(개인 청구권) 실현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정상
3) 대한민국 대법원 판결(2012.5.24)
[대법 “日帝 강제징용 배상해야”]“개인 청구권은 1965년 한일협정으로 소멸된 것 아니다”
동아일보입력 2012-05-25 03:00수정 2012-05-25 10:01
대법, 징용배상 첫 판결… 日최고재판소 판결 뒤집어
대법원의 24일 판결은 일제강점기 식민지배로 피해를 본 대한민국 국민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여러 소송에서 승소 가능성을 인정한 최초의 사법적 판단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주심인 김능환 대법관은 “건국하는 심정으로 이 판결을 썼다”고 주변 지인에게 털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법원은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일본 전범 기업의 배상 책임을 물렸다. 일본이 이를 문제 삼으면서, 일 제국주의 시절 피해를 본 우리 국민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소멸되는지에 대한 오래된 논쟁이 재현됐다. <조선일보> 등 우리나라 보수 우파 언론들까지 일본 편에 가세하면서 혼란스러운 모양새지만, 일본변호사협회 회장을 지낸 우쓰노미야 겐지는 우리 대법원 판결을 지지한다. 그가 왜 개인청구권이 국가 간 협정으로 소멸되지 않는지 일본 법원 판례 등을 근거로 설명하는 글을 보내왔다.
~중략~
강제징용 피해자 등 개인의 손해배상청구권을 국가 간 협정으로 소멸시킬 수 없다는 것은 현재 국제인권법상 상식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지금까지 일본 정부와 일본 최고재판소도 ‘한일청구권협정에 의해 개인의 실체적 손해배상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다’고 해석해왔다.
~중략~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소송을 낸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임금을 받지 못한 채 감전사할 수 있는 위험이 큰 용광로에 코크스(골탄)를 투입하는 등 가혹하기 그지없는 위험한 노동을 강요당했다. 제공받은 식료품은 극소량의 변변치 않은 것에 불과했고, 외출도 허용되지 않았고 도주라도 하면 체벌당하는 등 그야말로 열악한 환경에 있었다. 이것은 강제노동(ILO 제29호 협약)이나 노예제(1926년 노예제조약)에 해당하는 것으로 중대한 인권침해다.
10월 30일, 한국대법원은 마침내 긴 세월을 끌었던 사건에 마침표를 찍었다. 신일철주금이라는 일본의 글로벌회사에 일제 강점기에 있었던 강제동원·강제노동의 피해자에게 손해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중략~
과거청산 또는 과거극복의 모범국이라 불리는 독일조차 독일 정부와 기업이 기금을 내어 ‘기억, 책임 그리고 미래’재단을 만들어 강제동원 피해자를 구제할 때도 ‘법적 책임’을 부정했다. 그런데 한국 대법원이 일본 기업에게 강제노동에 대한 배상책임을 물었다. 개인의 권리 구제라는 측면에서 국제법상으로도 매우 획기적인 판결이 나온 것이다. 국가나 전체의 이름으로 개인의 권리를 억압하던 힘이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는 징후라 하면 너무 과한 평가일까.
3. 개인청구권 인정 판결, 한국 민주주의 도달점
1) 일본 좌우공존 민주주의
(1) 강제저축 통장, 명부, 위탁금 보관
(2) 시민운동, 한인 개인 피해자 지원\
((1)) 정보 청구, 소송 지원, 시위, 홍보
((2)) 아름다운 사람들: 인류적 인간
2) 오카모토의 국가주의 폭력
(1) 개인청구권 불법 강탈->봉쇄->폭력제압
(2) 3억에 통, 6,600만원 뇌물(22%)
3) 불가탈 개인청구권 인정: 민주주의 판결
(1) 한국 정부(박정희~문재인)
((1)) 1965년 한일협정으로 끝난 일
((2)) 아베와 100% 같음: 국가주의
(2) 시민운동(1987~): 아름다운 사람들
(3) 헌재, 사법부: 독일 능가 민주주의 판결
((1)) 개인=주권자, 기본권은 불가침 불가탈 권리, 개인청구권=기본권(재산권, 2012)
제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2)) 국가=의무체, 기본권행사 도울 의무, '부작위는 위헌'(헌재)
4. 혁명적 변화: 반공독재국가->민주국가
1) 1919 대한민국=민주공화국 선언
2) 1948 코메리카
(1) 간판=대한민국
(2) 실제-반공조폭체제
3) 1987년 민주화 시작
(1) 국가민주화, 자유화(자본) 수준
(2) 경제: 독점 강화
(3) 매->돈 앞에 장사 없는 나라
4) 2008 인식의 전환: 헌법 제1조 노래
(1) 여중/여고생 선도
(2) 태극기(국가)에서 헌법(주권자)으로
(3) 헌법 제1조 노래
1) 한국 헌재-대법원 민주주의 판결
(1) 개인=주권자
((1)) 개인청구권=기본권(재산권, 2012)
((2)) 기본권은 불가침 불가탈 권리
제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1) 문제 인식: 국가주의
((1)) 일제 식민지 개인 피해자 문제: 1965년 한일협정으로 끝
((2)) 국가 간 결정->개인청구권 소멸
(2) 아베-국가주의 세력
((1)) 아베정권, 일본 우익
((2)) 코메리칸-토착왜구: 자한당+조중
((3)) 미국은 후견
(3) 전쟁 도발-한국 공격
((1)) 아베 정권: 경제적 보복-수출규제, 화이트리스트 삭제
((2)) 코메리칸-토착왜구: 아베 지원, 문 공격, 한국 항복 요구
((3)) 미국은 바다 건너 불구경
3) 한국-민족민주세력 반격
(1) 문제 이식: 민주주의
((1)) 개인청구권은 불가침의 인권=기본권
((2)) 배상 당연
(2) 반제 민족민주세력
((1)) 한국 범민주세력: 한국 시민사회
((2)) 한국 반일제 범민족세력
((3)) 일본 민주세력: 아베 비판
((4)) 국제사회: 자유무역 옹호
(3) 반격
((1)) 한국인 의지 세계 과시: 일제 불매, 여행 안 가기
((2)) 치명타: 미국 자본-기업의 아베 융단폭격
4) 한일역사전쟁->(민주주의 대 국가주의) 국제전
(1) 일본-국가주의 승리
((1)) 한국 민주주의 패배, 국가주의 돌아갈 것
((2)) 동북아시아 전체가 국가주의 생지옥
중국 일당독재->시진핑 1인독재
조선 수령체제: 전체주의
일본 급속 우경국가
(2) 한국 승리
((1)) 한국: 세계적 위상 민주국가
((2)) 일본: 아베 정권 교체-민주화 가능성
((3)) 동아시아에 민주화 바람: 홍콩 등
6. 슬픈 내전: '토착왜구' 대 양다리
1) 도착증 '토착왜구'
(1) 아베꼬봉, 조국 공격 선봉(오카모토 후예)
(2) 반민족, 반국가, 반민주
((1)) 반민주: 피해자 개인청구권 부정
((2)) 반국가: 대법 판결 부정
((3)) 반민족: 아베-일본 우익 추종, 옹호
(3) 주적: 문재인 정부
2) 양다리
(1) 양다리 해결법: 1+1 해법
(2) 한일 역사전쟁->문재인 정권 수호전쟁
((1)) 한일 역사전쟁->(아베의 문정권 교체 작전)으로 왜곡, 선동
((2)) 문정권 수호전: 항일전->토착왜구 토벌전
(3) 가짜 항일: 민족적 극일운동에 편승
((1)) 시민의 불매운동: 7.1 발표 후 곧바로 시작
((2)) 불매운동, 여행 안가기 큰 성과: 7월 4,5일
((3)) 문재인(7.12-이순신), 조국(7.13-죽창가) 시민운동 편승
((4)) 촛불 때와 똑 같은 양다리-편승=과실
억눌린 우리 역사 터져나온 분노 매운 연기 칼바람에도 함성소리 드높았던 동트는 새벽벌 시월이 오면 핏발 선 가슴마다 살아오는 십 일육 동지여 전진하자 깨치고 나가자 뜨거운 가슴으로 빛나는 내일로
- 부산대학교 제2도서관 10.16 기념비
1. 79 부마항쟁은 무시해도 되는 ‘작은 일’인가?
1) 부마항쟁만 제외 (1) 삼일절, 광복절은 국경일 : 기미혁명/삼일절은 한국사 최고의 사건 (2) 3.15 의거, 4월 혁명, 5.18 광주항쟁, 6월 민주항쟁은 법정기념일 ① 4월 혁명은 당연히 국경일 ② 부마항쟁은?
2) 사실은 (1) 4월 혁명, 6∙3항쟁 이후 최초의 시민민주항쟁 (2) 분단조폭체제 원흉 박정희 제거, 유신체제 붕괴 초래
3) 그런데 왜 국가기념일에서도 빠졌나? (1) 김영삼 정권, 김대중 정권, 노무현 정권은 뭐했나? ① 3당 합당(90) 이후 부산의 ‘친독재 반민주’ 정서에 순응 : 광주항쟁과 대비 ② 부산운동권도 운동권 아닌 시민항쟁에 대한 무관심 ③ 시민항쟁 : 항쟁세력→기념 추진세력 안 됨 *민주화운동권 김재규 무시 *이런 일은 나도 많이 겪음
(2) <부마민주항쟁 관련자의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2013.3.7) ① 진상규명도 막는 법 ② 재평가, 국가기념일 지정도 불가
(3) 제대로 된 평가와 새로운 특별법 필요
2. 유신체제와 부산
1) 유신 : 오카모토 천황체제
(1) 천황 국가 : 조폭국가
① 두목 주권 : 초헌법 비상대권 ② 두목의 나라 : 초국가 중앙정보부가 고문-정치공작본부, 콘트롤 타워
(2) 관제 언론
(3) 가미가제 ‘국민’ 총동원체제
① 군사조직-물샐틈없는 안보체제 ② 주권자→박정희 꼬봉=국민
(4) 태극교의 나라
① 박정희=교주=신 ② 국민=태극교 신도 : 국민의례, 하기식→태극로봇=가미가제
2) 주권자 폭발의 조짐 : 10대 국회의원 선거(1978.12.12)
(1) 신민당의 선거 투쟁
① 유신헌법 개정, 긴급조치 9호 해제 ② 재벌 집중 공격 신민당은 선거구호인 “신민 위에 서민 있고 공화 위에 재벌 있다”의 내용이 선거법상 특정 정당 비방조항에 해당된다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사용금지 통보가 있었음에도 이를 무 시하면서 재벌문제를 집중적으로 공격, 선거 이슈로 잡았다.
(2) 부정∙탈법 선거에도 불구 득표율 신민당 1.1% 승리 ; 32.8%-31.7%
(3) 전 지역구에서 선전
① 지역구 154명 중 <68(공화당) vs 61(신민당)+3(민주통일당), 무소속 22> ② 서울(11-9), 부산(5-4), 광주(2-0) 등 대도시 압승(득표율 격차 대부분 10% 이상)
(4) 민심 뒤집기 국회
① 공화당 : 31.7% 득표에 의석은 2/3 (66.7%, 68+77(유정회)=145/231) ② 신민당 : 32.8% 득표에 의석은 1/4 (26.4%, 61/231)
3) 양김 협력, 김영삼의 단호한 투쟁
(1) 김대중과 김영삼
① 김대중 : 사상가, 탁월한 전력가, 민주혁명파의 리더 ② 김영삼 : 소박한 정의감, 최강 전투력, 민주개혁파의 리더
(2) 5.30 전당대회, 양김 협력
① 김재규 지원-김대중 연금 일시 풀어줌 ② 김대중 김영삼 적극 지원-김영삼 총재 당선
이 무렵 재야의 김대중이 총재경선에 나선 조윤형·김재광·박영록을 불러 경선을 포기하고 김영삼 지지를 설득했다. 이렇게 하여 주류·비주류 간의 팽팽한 대결이 예상되는 가운데 전당대회의 날이 밝아왔다.
(중 략)
양대세력은 각기 29일 전야제를 열어 자파 대의원들의 결속을 다짐했다. 그런데 연금 중인 김대중이 돌연 김영삼 세력의 단합대회장인 을지로 아서원에 나타나 “이번 전당 대회는 당내의 친유신파와 반유신파의 대결”이라며 김영삼 지지를 호소함으로써 김영삼 바람이 일게 되었다.
(3) 김영삼의 투쟁선언 김영삼은 이날 당선 인사말에서 “오늘은 진실로 위대한 민권승리의 날이며, 아무리 험한 길을 가더라도 민주회복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 싸울 것을 맹세한다”면서 “나의 당수도 전은 이 정권에 굴복할 수 없다는 데서 출발한 것이며, 오늘의 결과는 우리가 곧 여당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으로써 정권인수 준비가 되었음을 증명한 것”이라고 밝혔다. 김영삼은 이어 “국민성원에 진심으로 감사하며 오늘의 승리를 있게 해준 윤보선·김대중 씨를 비롯해 김재광·박영록·조윤형·이기택 씨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4) 김영삼의 결사적 투쟁
① YH무역 노동자농성 사건 1979년 8월 9일 가발 수출회사인 YH무역의 여성 노동자 172명이 서울 마포구 신민당 당 사에 찾아와 농성에 돌입했으며 이들을 만났다. 20대 여성 노동자들이 신민당 당사에 진입 하자 신민당 총재인 김영삼은 이들을 위로하며 ‘여러분이 마지막으로 우리 신민당사를 찾 아 준 것을 눈물겹게 생각한다’며 ‘우리가 여러분을 지켜주겠으니 걱정말라’며 노동자들을 안심시켰다. 이후 YH무역 여공과 노동자 시위를 주관하던 노동운동가들이 모두 신민당사 와 신민당 지구당으로 숨어들었고, 경찰서와 검찰은 신민당사와 지구당 주변을 수색, 감시 하게 된다. 김영삼은 3일 간 이어진 원내 철야농성을 진두지휘하였다. 8월 9일부터 8월 10일까지 김영삼과 신민당 의원들은 신민당 당사 주변을 순찰하며 경찰청 정보과, 보안과에서 나온 형사들을 발견하면 멱살을 잡고 발길질을 하고 따귀를 치며 경고를 하였다. 8월 11일 새 벽, 경찰이 신민당에 최후통첩을 내렸다. 이순구 서울시 경무국장이 당사에 전화를 걸어 총 재를 바꾸라고 당직자에게 요구했지만 김영삼은 건방지다며 전화를 받지 않았다. 오히려 작전지휘에 나선 마포경찰서장을 만나자 “너희들이 저 여공을 다 죽이려 하냐”며 뺨을 올 려붙였다. 곧이어 2000여 명의 경찰이 신민당사에 투입되고 신민당 의원, 당직자 등과 몸싸움을 벌였지만 역부족이었고 23분 만에 진압작전은 완료돼 YH무역 노동자들은 모두 강제연행 되었다. 경찰의 연행과정에서 건물옥상에 올라간 YH무역 노동자들 중 여공 김경숙(당시 21세)이 시위 도중 신민당사 4층에서 추락하여 사망하고 신민당 총재 김영삼은 경찰에 의 해 상도동 집으로 강제로 끌려나갔다. YH무역 여공 김경숙(당시 21세)이 시위 도중 신민 당사 4층에서 추락 사망했다. 김경숙이 사망하자 김영삼은 3일간 원내 철야농성을 진두지 휘하였다. 이후 그는 YH무역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백서를 발표하였다.(위키백과)
② 결사항전 1979년 10월, 신민당 총재직에 있었으나 뉴욕타임스지를 통해 미국에 대하여 “박정희 정 권에 대한 지지를 철회할 것”을 요구하다가 1979년 9월 공화당과 유정회는 9월 16일자 뉴욕 타임스에 실린 김영삼 총재의 회견기사가 ‘헌정을 부정하고 사대주의 발언을 했다’고 비판했다. 김영삼은 ‘미국이 한국에 대해 원조제공을 중단하고 정부에 대해 민주화조치를 취하도록 압력을 가하라’고 촉구하고 사대주의 발상이라고 비난하는 여론에 ‘미국은 우리 에게 압력을 가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나라’라고 인터뷰를 통해 밝혔다. 10월 4일에는 공화당과 유신정우회 주도로 ‘(김영삼이) 국회의원으로서 본분을 일탈하 여 반국가적인 언동을 함으로써 국회의 위신과 국회의원의 품위를 손상시켰다’며 김영삼의 국회의원직을 제명을 요구했고, 국회에서 여당 단독으로 신민당 김영삼 총재의 의원직 박 탈을 의결했다. 제명을 당하게 되자 김영삼은 “나를 제명하면 박정희는 죽는다”고 호언장 담하였다. 공화당에서는 그의 이 발언을 외세를 등에 업고 사회분란과 내란을 조장하려는 음모라며 공격을 가하였다.(위키백과)
4) 부마 경제 : 생략
5) 변혁에는 반드시 대안 리더, 대안 이념 필요
(1) 김재규의 1인 혁명(천황 사살)
(2) 반독재 민주화
① 대안 이념 : 민주주의 ② 대안 리더 : 부마항쟁-김영삼, 광주항쟁-김대중
(3) 민주혁명
① 노무현의 민주혁명 ; 미완 ② 지금 우리에게 민주혁명의 리더가 있는가?
3. 정광민 의거, 부산대 시위
수감 후 출소하는 정광민 씨.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김탁돈) 제공
1) 시위 불발
(1) 10월 15일 두 그룹 유인물
① 공대 이진걸 팀의 <민주선언문> ② 법정대 신재식 팀의 <민주투쟁선언문>
(2) 유신독재타도 선언 : 유신정권을 ‘조직적 악의 근원’(민주선언문), ‘악의 표본’(민주투쟁 선언문)으로 규정 투쟁, 타도 선언
(3) 실패 : 시위 주도자 부재
2) 정광민의 시위 주도(79.10.16)
(1) 15일 시위 불발, 정광민(경제학과 2), 몇몇 친구에게 시위 주도 의지 표명, 도움 요청
(2) 자신의 다락방에서 전도걸과 함께 <선언문> 작성, 등사
(3) 정광민, 10.16일 10시 경 인문사회관 306호, 유인물 나눠주고 주동 시작 이튿날 16일 오전 10시 정광민(상대 2학년)은 인문사회관 306호 강의실로 뛰어 들어갔다. 40여 명이 공부하고 있던 강의실 뒤쪽에서부터 유인물을 나눠주며 이렇게 외쳤다. “학우 여러분! 드디어 때가 왔습니다. 저 유신독재 정권에 맞서 우리 모두 피 흘려 투쟁합시다!” 분위기는 어제와 딴판이었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학생들은 의자를 박차고 밖으 로 몰려 나갔다. 전날부터 이상한 낌새를 채고 잠복하고 있던 사복형사들이 덮쳤으나 이내 학생들의 뭇매를 맞고 도망쳤다. 인문사회관 앞에는 순식간에 100여 명이 모였다. 자연스 럽게 “독재타도” 구호가 터져 나왔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날 학생시위가 그날 저녁에 무려 5만 군중이 참여하는 격렬한 가두시위로 발전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동아일 보, <허문영 기자가 쓰는 ‘김지하와 그의 시대’ 97-부마항쟁>)
3) 부산대 시위 폭발
(1) 주동자가 나타나자 폭발적으로 참여
(2) 교내 시위 후 시내 진출
(3) 정광민은 친구들 권유로 피신 “아주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는데 대학 2학년이 되어서 정동현 교수가 하는 경제사를 들으면 서 세상을 깨우치게 되었습니다. 부마항쟁 전에는 운동권하고는 아무 연계가 없었지요.” -81년 가석방되면서는 어떻게 살았어요? “한동안 낭인으로 지내다 84년에 복학을 했어요. 86년에 졸업을 하고 현장활동을 좀 했습 니다. 89년 쯤에 지역사회문제자료연구실이라고 단체를 만들었어요. 나중에는 부산노동자료 연구실이라고 이름을 바꿨는데 노동운동자료집도 내고 노동조합 조사도 하고 교육도 하고 91년까지 <지역과 노동>이라는 무크지를 10호까지 냈는데, 이 책이 제법 유명했습니다. 서 울 대학가에서도 팔리고 부마항쟁 이후로는 이 활동에 모든 것을 바쳤지요."
-중 략-
“당시 부산의 운동권 주류가 NL이었기 때문에 NL에 비판적인 저는 왕따 취급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북한을 한번 정리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2005년 3월에 학위를 - 6 - 받고 들어왔더니 아무도 알아주는 이가 없어서 서울 고시촌에서 살면서 하루 하루 차비를 걱정하며 살았습니다. 결국 다시 이흥록 변호사를 찾았더니 아는 분을 통해 국정원 산하 연 구소를 소개해주었습니다. 당시 고영구변호사가 국정원장일 때이고 국정원 산하에 북한경제 를 연구하는 연구소에 민간인 자격으로 들어가는 것이라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데 정권이 바뀐 다음에는 친노좌파로 낙인이 찍혀서 작년 8월에 쫓겨나듯이 나왔습니다.” (한국일보, [서화숙의 만남] 정광민 “산업화 이후 최초의 시민항쟁… 진상 규명위한 특별법 절실”, 2011-10-16) 부마항쟁 발단된 시위 주동자, 37년만에 누명 벗다 부마항쟁의 발단이 된 1979년 10월 부산대 시위 주동자가 재심을 청구해 무려 37년 만 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부산지법 형사합의 6부(유창훈 부장판사)는 정광민(58)씨가 제기한 ‘국가안전과 공공질서 의 수호를 위한 대통령 긴급조치 위반 등’ 혐의 면소 판결에 대한 재심 청구소송에서 정씨 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고 22일 밝혔다. 재판부는 “공소사실은 적용법령인 긴급조치 제9호가 당초부터 위헌·무효여서 범죄가 되지 않기 때문에, 형사소송법에 따라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한다”고 밝혔다. 정씨는 부산대 경제학과 2학년 재학중이던 1979년 10월 16일 오전 9시 40분쯤, 인문사 회관에서 미리 제작해둔 ‘언론집회 결사의 자유 보장, 헌법철폐와 대통령 하야’ 등의 내용이 담긴 유인물 90매 가량을 뿌리고 집회를 열었다. 이에 부산대 학생 1천여 명이 연대해 함께 집회에 나섰고, 정씨는 학생들과 함께 애국가, 교가 등을 부르며 부산대 정문으로 나가며 행진을 하다가 경찰에 의해 해산됐다. 결국 정씨는 수사당국에 수배됐고 1979년 10월 19일 경찰에 자수했지만, 시위 주동자라 는 이유로 유치장에서 형사들에게 온갖 고문을 당했다. 그는 긴급조치 제9호 위반 혐의로 구속돼 재판을 받다가 1979년 12월 8일 긴급조치 9호 가 해제돼 석방됐다. 이어 1979년 12월 27일 부산지법에서 면소 판결을 받고 학교로 복귀했지만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되면서 예비검속 대상으로 체포돼 고문을 받았다. 1980년 8월 8일 군법회의에서 유죄판결을 받고 부산대에서 출학처분을 받는 등 체포와 고문을 반복해서 받으며 갖은 고통을 당했다. 부마 민주항쟁계승사업회 회장인 정씨는 “국가권력이 불법적 공권력으로 당시 시위에 참 가했던 사람들을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 빨갱이로 몰아 구속과 고문 등 갖은 고초를 겪었다” 며 “37년이나 흘러 늦은 감이 많지만, 한 사람의 인생을 짓밟는 이런 일들이 되풀이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노컷뉴스, 2016-4-22) ***민주화 훈장을 받아야 할 사람이 차비 걱정 ***독립운동가 신세 저서 : 김일성과 박정희의 경제전쟁 부산 바보들 : 정광민, 최동원, 노무현
4. 부마항쟁
1) 부산항쟁(10.16~18)
오전 11시, 시위대는 페퍼포그를 앞세우고 저지하는 경찰까지 뚫고 거리로, 시내 중심가로 진출했다. 오후 2시 부산 남포동 부영극장 앞 시위는 ‘부산항쟁’의 도화선이 됐다. 200∼ 300명씩 스크럼을 짠 학생들이 남포동과 광복동을 오가며 구호를 외치자 오후 3시경 국제 시장에는 2만∼3만 명이나 되는 군중이 모여 구호를 따라 외쳤다. 시위대에 김밥, 우유, 달 걀, 박카스, 담배가 줄을 이어 건네졌다. 시민들은 시위대가 쫓겨 가게로 들어가면 셔터를 내려 숨겨주었고 건물 위에서 연탄재, 화분, 재떨이, 병 등을 경찰에게 던지며 진압을 방해 했다. 저녁 8시가 넘어서자 시위대는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났다. 이윽고 남포동 파출소가 불타고 경찰 순찰차가 불태워졌다. 3만∼5만 인파가 남포동 일대를 가득 메웠다. “밤 10시부터 통 행금지를 실시한다”는 당국의 발표가 있었지만 시위는 새벽 1시까지 이어졌고 이 과정에서 파출소 11곳이 불태워졌다. 명실상부 4·19와 6·3항쟁 이후 시민들이 참여한 대규모 시민항 쟁이었다. 다음은 부산민중항쟁 자료집에 있는 부산 시민들의 증언이다. ‘16일 저녁 7∼8시경이 되자 고등학생, 퇴근하던 노동자, 국제시장 주변 주민 등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가 늘었고 시청 앞은 해방 공간이 됐다. 이날 마지막까지 투쟁한 사람은 서비스 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룸펜, 빈민, 노동자들이었고 학생들은 맨 먼저 이탈했다. …다방 아 가씨와 술집의 호스티스까지 나와 박수치고 고함을 질렀다. 세상은 이미 달라지고 있었다.’ 이날 저녁 8시, 부산대는 긴급 교수회의를 열고 무기한 휴교를 결정한다. 다음 날인 10월 17일은 유신이 선포된 지 만 7년이 되는 날이었다. 전날 부산대 학생들에 이어 동아대 학생들까지 시내 곳곳에서 합세했다. 오후 4시경부터 부산 시청 앞 남포동과 광복동에 몰리기 시작한 학생들은 경찰과 공방전을 벌이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저녁 7시 경부터 곳곳에서 산발적인 시위를 벌였다. 하지만 시위의 주도권은 어제처럼 시민들이었다. 넥타이를 맨 퇴근길 회사원들부터 노동자, 상인, 식당 종업원, 재수생, 교복 입은 고교생들 까지 나섰다. 시위 양상도 훨씬 격렬해졌다. 경찰은 속수무책으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저녁 7시 25분경 충무파출소를 불태운 시위대는 ‘언론자유’ 구호를 외치면서 밤 9시에는 KBS부산방송국을 공격했으며 세금인상에 반대한다 며 서구청 부산세무서, 서대신 3동사무소 건물을 파괴했다. 시민들은 파출소를 점거해도 무 기고에는 손대지 않았고 흉기도 지니지 않았다. 민간인의 재산이나 병원 같은 공공시설은 훼손하지 않았으며 상점에서 물건을 약탈하지도 않았다.
박정희 대통령은 18일 0시를 기해 부산에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공수부대를 투입했다. 다음 은 10월 18일자 동아일보 보도다. 박 대통령은 18일 오전 대변인을 통해 발표한 특별담화문에서 “오로지 악랄한 선동과 폭력 으로 사회질서를 파괴하고 국리민복을 해치며 헌정기본 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불순분자들의 일체의 경거망동과 불법행위를 발본색원하자는 데 계엄선포의 목적이 있다”며 “안정과 번영 을 바라는 대다수 국민들의 사회활동과 생활에는 추호의 불편이나 위축을 주지 않도록 할 것이며 모든 국민이 안심하고 생업에 열중하여 국력배양에 계속 기여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궂은비가 내리고 어둠이 깔려 스산했던 18일 저녁 7시 55분쯤 남포동 동명극장 앞에 모여 든 2000여 명의 시위대가 계엄군이 지키는 시청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대검을 꽂은 M16을 휘두르며 최루탄을 쏘아대는 공수부대의 진압에 시위대는 흩어졌고 무수한 시민들 이 부상을 당하면서 부산 시내는 다시 ‘강요된 침묵’ 속으로 빠져들었다. 사흘에 걸친 부산 민중항쟁은 이렇게 끝나는가 싶었다. 그러나 이 불길은 마산으로 번져가고 있었다. (동아일 보, <허문영 기자가 쓰는 ‘김지하와 그의 시대’ 97-부마항쟁>)
2) 마산항쟁 : 생략
5. 혁명적 민주주의로 빚은 시민축제
1) 반독재 범시민 민주항쟁
(1) 참여계층 : 학생(선도, 끝까지 투쟁), 각계각층 시민
① 다수 학생들 끝까지 참여 : 검거자, 재판 회부자의 1/3이 학생 ② 각계각층 참여 : 특히 민중의 적극 참여, 전투적 공격
(2) 참여 동기 설문조사(차성환, 부마항쟁과 민중, 172쪽)
① 독재정치 반대 35명(68.6%) ② 분위기에 휩쓸려서 6명(11.8%) ③ 정부 불신 3명(5.9%) ④ 진압이 잔혹해서 3명(5.9%) ⑤ 먹고 살기 힘들어서 1명(2.0%)
(3) 부마항쟁 참여에 영향을 준 사건 : 독재, 민중 탄압에 대한 분노가 98%
① 김영삼 국회 제명 12명(25.5%) ② 대학생들 시위 11명(22.9%) ③ 유신(헌법, 긴급조치 등) 반대 11명 ④ YH 사건 5명(10.6%) ⑤ 경찰의 지나친 진압 4명(8.5%) ⑥ 동일방직 사건 1명(2.1%) ⑦ 생활고 1명
(3) 폭력의 제한 부산의 야간 항쟁에 대한 관찰 기록을 보면, 데모대가 폭력을 행사했지만 분명한 절제의 선 이 있어 민간인의 점포나 기물을 부수거나 훔친 일은 없었다. 경찰관 납치나 흉기 사용도 없었고 파출소를 점거해도 무기고는 손대지 않았다 범죄적인 난동은 없었다. 시위대의 숫자 가 수만 명에 이르렀고 수천 명의 경찰이 동원됐고 사흘간의 야간 시위가 벌어졌는데도 사 망자가 1명도 없었다는 것은 데모대의 행동이 포악하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한다고 기록하 고 있다(조갑제 유고 2, 39쪽)
3) 시민공동체
(1) 일체감 시위대와 시민들의 정서적 일체감이 나타난 최초의 형태가 바로 국제시장 안 시위였다. 학 생들이 경찰에 쫓겨 들어오면 수건 등을 내어주고 경찰이 달려들면 셔터 문을 내렸다. 전파 상에서는 애국가를 틀어주고, 음식점∙문구상에서는 음식과 태극기를 내어 주었다. 모두 밖으 로 나와 구경하거나 협력했다. 또 부산시민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시위대 와 함께 어깨동무하고 노래 부르면서 ‘동료의식’을 확인할 수 있었다. (차성환, 190쪽) 이처럼 시위대와 시민들, 시위대의 구성원 상호간에 매우 강한 일체감을 갖고 있었음이 설 문 조사에서 확인된다. 항쟁 참여자들을 대상으로 다른 참여자에 대한 일체감을 묻는 문항 에 대한 답변에서 상호일체감은 10점 만점에 평균 7.7의 높은 수준을 보여주었다. 항쟁에 참여한 자신의 행동에 대한 자부심을 묻는 문항에서도 10점 만점에 평균 8.0의 강한 자부 심을 느끼고 있었다는 답변을 얻을 수 있었다.(차성환, 191쪽)
(2) 인간 회복 : 통치 대상→항쟁주체, 주권자로
① 공포로부터의 해방 : 새로운 주체, 자발적이고 전투적인 군중 ② 통치∙동원 대상→항쟁주체, 주권자로 10월 16일의 부산 시위에서도 어두워지면서 넥타이를 맨 퇴근길의 회사원, 노동자, 상인, 업소의 종업원, 재수생,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 중학생에 이르기까지 신분과 계층을 아우르 는 혼연일체가 이루어졌다. 시청 앞과 충무동 입구 사이의 6차선 대로에 엄청난 인파가 장 엄한 행렬을 이루어 거대한 조수처럼 밀려다니며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불렀다. 어둠이 짙 어지면서 시위의 양상은 더 격렬해지고 주간의 소극적 방어위주의 시위에서 적극적 공격위주의 시위형태로 바뀌어 간 것도 확인된다. (차성환, 225)
4) 혁명적 민주주의
(1) 사례 1
① 부산 남교회 앞 시위대 즉석 토론 ② 경찰 폭력 맞서 시위대도 폭력을 행사할 것인가? ③ 강경론 우세 ④ 맥주병을 휘두르며 경찰 진압부대 향해 돌격
(2) 사례 2 : 사진 찍는 동아일보 기자 붙잡아 처리문제 토론
(3) 사례 3 : 마산 양덕파출소 토론
① 무기고를 부수자는 주장 ② 대부분 군중 반대로 그대로 둠
(4) 사례 4
① 마산도립병원 투석하려는 사람 제지 ② “병원이 무슨 죄가 있느냐. 병원은 놔두자”
(5) 사례 5
① 마산 시위 현장 ② 심야 시위를 할 것인가? ③ 체포된 동료를 구하기 위해 시위 계속해야 한다는 결론 ④ 각목 들고 파출소 공격
(6) 즉석, 직접 민주주의
① 즉석 토론을 통해 민주적 문제 해결 ② 자유, 평등, 연대의 가치가 살아 움직이는 <주권자 공동체> 체현
5) 한국민주화운동의 절정
(1) 민주화의 절정 : 독재/유신의 핵 제거, 유신체제 붕괴로 연결 ; 김재규의 탕탕혁명
(2) 짧지만 절정의 민주주의, 공동체 체험(10.16~20)
① 해방감 : 공포로부터의 해방 ② ‘나’의 발견 : 통치대상→항쟁주체, 주권자 ③ 시민공동체-주권자공동체 : 공감과 동지애/동료의식 ④ 동등한 항쟁주체, 주권자→혁명적 민주주의 체험 ⑤ 민주항쟁이 시민축제로(조갑제, 유고 1, 308쪽) 열흘(10.16~26) : 소설, 드라마, 연극, 영화 열흘 공부팀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사람이 자기를 절대화 하고, 자기의 말을 진리로 삼는 것은 민주주의 자체를 역행하는 것이며 철저하게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것이다.
세계의 어떤 민주주의 국가도 국정교과서를 채택하는 국가가 없으며 있다고 하더라도 실질적으로 이름만 민주주의를 달고있는 전체주의 독재국가들과 공산주의 국가들만이 국정교과서를 채택하고 있다.
박정희, 박근혜가 국정교과서를 채택하는 것은 국민들에게 자기세력들의 말을 진리로 선포하고 국민들에게 반공우리에 가두어 다양한 사상과 생각을 못하게 만들어 반공로봇으로 재탄생 시키기 위한 목적이 컸다.
남과 북 박정희, 김일성 모두 겉으로는 서로를 욕하면 적대시 했지만, 실질적으로 그 만큼 똑같은 사람들도 없다. 둘 다 자기를 절대화 시키고 헌법과 국가 위에 자기를 올려놓고서 타이틀만 민주공화국, 인민공화국이었잖은가?
솔직히, 지난 번 대선에서도 진정한 민주주의자는 '문재인, 이재명, 심상정' 정도만 있었지
그나지들은 참~! 아~! 난감했다. 자기말이 진리인 절대주의자들 이런 사람들이 권력을 잡았을 때에 언제 다시 독재로 흐를지 모른다.
그런 점에서 진리의 독점이란 독재의 길이며 반드시 막아야 하며, 그 것이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첫걸음이다.
https://youtu.be/8yVvmcDD8Cg
최상천의 사람나라 21강-특강2
역사교과서, 2차 대박전쟁의 시작
대박전쟁 : <대한민국 vs 박정희가문>의 국가정체성 전쟁/주권전쟁 조김전쟁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vs 김일성가문>의 주권전쟁 김일성신국 주권전쟁의 결정적 무기가 교과서, 특히 역사 교과서
1. 국정교과서의 세 가지 진실
1) <국정교과서=유일교과서>는 각종 종교국가에서 '국정 종교','국정 진리'를 나라사람에게 주입하기 위해 사용하는 <국정 진리 보급서>다.
(1) 특정 이데올로기를 '국정 진리'로 강제하는 종교국가=전체주의국가
((1)) 정통 종교국가 : 기독교(중세 암흑시대 천년), 이슬람(IS), 유대교(이스라엘) ((2)) 공산국가=유사 종교국가 : 공산주의 ((3)) 특수 종교국가 : 특정 이데올로기->국교/국정 진리 : 나치독일(나치즘), 일본 군국주의(천황 절대주의), 김일성 유일체제(주체사상), 박정희 유신체제(반공주의, 反共主義)
((1)) 절대주의 국가의 세 가지 특징 : 최고권력 절대화/신격화, 국가 신성화/성역화 특정 이데올로기 國敎화 ((2)) 절대주의->전체주의/종교국가 : 전체주의 교육(전인민의 신도화, 로봇화), 관제언론
(3) 전체주의 교육의 핵심 기재 : 국정교과서, 특히 철학/역사 교과서
((1)) 전체주의 교육 시스템 : 국정교과서는 국민(황국신민) 재생산 시스템의 텍스트 <국정 진리/진실->국정교과서->강의(주입)->시험(세뇌)->차별보상>---국정 진리, 국정교과서 세뇌 성적에 따라 인생 결정 ***한국에서 교원노조는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 : 전체주의 교육 시스템에 구멍 송송 ***박정희, 박근혜가 교원노조 죽이기에 혈안이 돼 있음
((2)) 국정교과서의 특징 : 주체 선정, 해석, 정답을 국가가 결정---인민/국민은 주입 대상
((3)) 공산국가/전체주의국가는 반드시 국정교과서를 사용한다. *특히 철학과 역사는 반드시 국정교과서를 사용했다. *'국정 진리'를 벗어나는 철학과 역사학을 허용하면, 소위 '반국가', '반공산당' 사상이 나오고 '양심의 자유', '사상의 자유', '학문의 자유' 요구가 폭발하고 민주화의 길로 간다. *<'국정 진리'->국정교과서>는 모든 양심, 진실, 학문, 사상을 죽인다. *결국 사람=인격주체를 짐승, 로봇으로 만든다.
((4)) 그래서 공산국가는 아직도 <공산주의=국정 진리>이고, 국정 역사 교과서제도이다. 조선(북한), 중국, 쿠바, 베트남
(4) '올바른 교과서' : 국정 진리를 담은 교과서~
2) 국정 역사교과서, 최고 성공 사례
(1) <절대자(김일성)->국정 진리->국정교과서->국민 주입/세뇌->로봇화>시스템이 최고의 성공을 거둔 나라 : 조선
(2) 북한 국정 역사교과서/ 인민교과서 격인 조선통사, 현대조선역사 : 김일성 신국---전지전능->교시 교과서
(3) 전도(顚倒) : 거꾸로 선 나라 조선
((1)) 국가 전도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김일성 신국 ((2)) 전도의 극치 : 3대 신위세습---남한도 3대 세습(재벌, 조선, 동아, 사학) ((3)) 주권 전도 : 인민주권->수령주권(위대한 수령, 영도자), 인민은 수령의 총폭(銃爆) ((4)) 국정 진리->국정교과서->인간의 주체성/독립성 말살->인민의 로봇화 : 매스게임, 군중대회(당 창건 70주년 기념 500만 동원) ((5)) ~ 특별한 복지국가(1960대 전반)->굶어 죽는 지상낙원
(4) 국정 역사교과서는 김일성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죽이기의 수단이자 산물
3) OECD 국가 중 국정 역사교과서를 쓰는 나라는 없다.
(1) 국가가 특정 이데올로기를 국가이념이나 '국정 진리'로 정하는 나라는 민주국가 아니다. '국정 진리'를 가진 나라는 예외없이 종교국가=전체국가다.
(2) 민주국가의 기본 원리
((1)) 사람=인격주체, 자기결정권을 가진 독립적 인격체 ((2)) 정치 : 주권자---기본권(사고와 행위의 주체), 주권자공동결정제도 ((3)) 경제 : 노동과 소유의 주체
(3) 민주국가에서 <국정 진리->국정교과서->국민세뇌>는 상상할 수 없는 국가범죄
2. 국정교과서의 교훈
1) 국정교과서->인간의 가축화/로봇화 : 당근과 채찍
(1) 교육 순응->앞잡이->우수 학생/인민/국민->일류대학, 고시합격->출세보장
((1)) 주입/세뇌 교육 : 국정교과서->교사의 강의->시험->차별 보상---서열사회 ((2)) 국정교과서 성적 우수자는 체제 요원으로 발탁->앞잡이 ((3)) 일본 군국주의, 북한 김일성체제, 남한 반공체제는 모두 우수한 세뇌교육 시스템 ((4)) 오늘날 남북한 기득권층의 90%는 <국정교과서 사관학교>의 시험천재들 ((5)) 1980년대까지만 해도 성적 20% 안에 못들면 돌대가리/무능력자/낙오자 취급
(2) '국정 진리', 국정교과서를 거부하면: '국가의 적', '진리의 적'->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살인(마녀처형, 고문 살인), 낙인(사~ 인격살인)
(3) 암흑시대->생지옥->멸망 ((1)) 유럽 중세 기독교 ((2)) 히틀러 나치교국가, 일본 천황교국가, 구소련과 동구권 공산교국가들
(4) 조선반도는?
((1)) 북조선은 이미 헬조선->멸망 단계---망하는 날이 인민해방의 날 ((2)) 남조선은 헬조선 진입 단계->이미 급행열차를 탔다.
3. 1차 대박전쟁 : 박정희의 대한민국 죽이기 대성공
1) 김일성의 ('국정 진리'->국정교과서)
(1) 김일성의 정체 : 특급 빨갱이=전체주의자->천황체제
((1)) 빨갱이 얼치기 공산주의자 정체 : "내가 진리다." 진리 독점 ((2)) 빨갱이는 기회만 오면 <나=진리=절대자=신=천황> 국가를 추구한다. ((3)) 빨갱이(진리 독점자)가 정권을 잡으면 반드시 (절대자->국정 진리->국정교과서) 구축
(2) 국정 진리 : 공산주의->주체사상
(3) 국정 역사교과서=인민 역사교과서 : 조선전사, 현대조선역사
(4) 결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 김일성신국 건설
2) 박정희의 정체
(1) 천황주의자 : 충성혈서, 일본의 견마(犬馬), 일본육사, 일본군
(2) 빨갱이 : 군대내 남로당(빨갱이) 두목, 전체주의자
(3) 대한민국 파괴 주범 : 5.16 반란, 3선 개헌, 유신체제
(4) 반인륜 범죄자
((1)) 배반의 신 : 친구, 가족, 동지, 조국, 민족, 대한민국, 파원장병,일제 피해자 ((2)) 강도 왕 : 부일장학회->정수장학회(부산일보 주식 100%, 서울문화방송 주식 100%, 부산문화방송 주식 100%, 토지 10만평), 청구대학/영남대학교, 어린이대공원(육영재단), 구로구 토지(30만평, 2014년 2월 1,100억 배상판결) ((3)) 강간 왕 : 워커힐 기생파티, 세검정 안가, 궁정동 안가 200명 여성 성폭행
(5) 빨대 박정희 : 인,허가권 이용 10% 리베이트, 재벌 몰아주기, 공무원`군인`사학연금, 복지비 GDP 대비 1% 이하
(6) 매독 총수 : 매국+독재의 최고봉---박정희 경제신화 날조, 정당성 기반
3) 7.4 민족적 사기 : 김일성 유일체제 본뜨기
(1) 7.4 공동성명 : 神급 사기
((1)) 아직도 한국+조선인 99.99%가 민족통일을 위해 남북이 합의한 최초의 '남북대화합의 문서'로 착각
((2)) 통일의 3대 원칙 :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민족대단결이 사기의 핵심---독재대야합->유신체제, 유일체제 *통일의 3대 원칙 : 자주(결정 주체), 평화(방법), 민주(통일국가)
((3)) 민족통일잔치->김&박 천황체제 구축 : 유신체제, 유일체제
((4)) 1972년 12월 27일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사망한 날
((5)) 이 사기극의 주인공은 박정희 : 김일성유일체제 본뜨기
(2) 유신체제=유일체제=천황체제의 시스템 : <절대자->국정진리->국정교과서->주입/세뇌->신민화/가축화/로봇화>
((1)) 절대자=영도자=수령, 국가 위의 존재 ((2)) 국정 진리 : 주체사상, 반공주의(더 저질) ((3)) 국정교과서 : 국어, 도덕, 국사, 사회 등 거의 전과목
4) 국정 교과서 : 진실/가치/역사 전도(顚倒)->세뇌
(1) 북 : 유일체제
((1)) 국정 이녈 : 주체사상---김일성 신격화 사상, 수령로봇프로그램
((2)) 김일성(독재자-천황) : 위대한 독립운동가, 장군님, 위대한 영도자, 위대한 수령 *독재의 신->구국의 신
((1)) 언어능력 : 베이비 토크 수준(전여옥)---앞뒤가 안 맞는 횡설수설, 수첩공주 ((2)) 자기 절대화 : 유신공주->수령 체질 ((3)) 5.16, 유신, 새마을운동 옹호
(2) 정체가 가장 잘 드러난 시기 : 영남대 수령
((1)) 강탈 학교(국가 헌납)->박정희 교주(정관 제1조) ((2)) 이사 4/7 임명---유신 천황(국회의원 1/3임명)보다 더 큰 권력 행사 ((3)) 박정희의 국가사유화 < 박근혜의 학교사유화 ((4)) 박정희(쟁취 권력)보다 더 위험한 수령급 권위주의(세습권력) *박근혜는 김정일, 김정은 처럼 나면서부터 절대 권위 향유 *절대 권력 2세, 3세는 아주 위험하다. 황제체질, 수령체질
(3) 그네스도 수령
((1)) 청와대 이후 ~ 내 말이 진리!
((2)) 비정상 정권 : 국가정보원을 권력의 전위로, 모든 일이 공작대상으로 *대선공작, 간첩조작, 세월호, 김기춘, 이병기 *뒤집어씌우기 : 세월호 사건을 몽땅 유병언 에게
((3)) 정상인 제거 : 채동욱 검찰총장, 윤석렬 검사, 유승민(자유민주주의자)-배신자
((4)) 빨갱이사냥 : 통합진보당 해체, 전교조 탄압
((5)) 수령신민, 박통신민 : 투표권자의 40% 안팎---30%는 수령로봇 수준
2) 국정 역사교과서의 목적
(1) 반공놀이
((1)) 북괴놀이 : 때로는 악마로, 때로는 거지로, 때로는 통일놀이 상대로 활용 ((2)) 빨갱이놀이 : 빨갱이사냥, 종북몰이 ((3)) 분단의 덫 악용 : 남북 대결, 좌우 대결 구도
(2) 민족반역, 국가반역 정당화/미화
((1)) 광복절->건국절 : "우리는 친일 민족반역 집단이 아니라 건국주체세력이다." ((2)) 식민지 수탈론->식민지 근대화론 : 일본덕에 근대화 터전을 닦았다. "우리의 친일은 '조국 근대화'를 위한 애국활동이었다." *대자본의 90%가 일본자본, 한국인의 70% 소작인, 수작료 50~90%, 대부분 절대빈곤
((3)) 5.16반란->5.16혁명 : 5.16은 '조국 근대화'를 위한 구국혁명이다. ((4)) 박정희=근대화혁명가, '한강의 기적'을 일군 영도자 ((5)) 유신체제=한국적 민주주의
(3) 진실 왜곡->국정 진리
((1)) 광주민주화운동->광주 폭등(북한군), 광주학살->폭등 진압 ((2)) 천안함 구조 방해->천안함 폭침 ((3)) 세월호 구조 방해->세월호 사건
이런 때에 여운형 선생과 같은 분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그 분도 이 상황을 보며 마음을 조렸겠지!
그리고, 과연 협상이 잘돼서 종전선언이 이뤄질까? 괜히 어린 소년처럼 마음이 들뜨고 설랜다.
나의 아버지는 6.25참전용사로 사셨고 빨갱이들에 대한 적개심이 대단하셨다.
그런 분과 어머니도 이북사람들, 그 사람 빨갱이이야! 이런 정도의 표현을 썼지? 저들에게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붓고 막말을 쓰지는 않으셨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렇게 저들에 대해서 입에 담지 못할 모욕적인 발언과 몰상식한 욕설을 함부로들 하는 걸까?
우리 민족은 고려가 원나라에게 굴복한 이후에 거의 처음으로 외세에 대해 강력한 대외 전쟁도발 억지력을 보유하게 됐다. 비록 아직 남한까지 포함한 지역을 보호하기 위한 무기로 보기는 어렵지만 어떻게 해서든 저 핵을 우리 민족의 핵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만 된다면 작년 남한의 촛불혁명과 북의 핵무력 완성은 한국사 수천년 이래의 일대의 사변이 될 것이다.
북한은 이미 마르크주의의 공산주의 사회가 아니다. 단지 절대주의 독재국가일 뿐이다. 종전협정이 맺어진다면 북한이 어느 정도의 정상적인 국가형태로 변화하는데 까지는 10년이면 충분할 것이다.
북한의 비핵화는 처음부터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최상천 선생님도 얘기했지만, 아마도 ICBM을 더 이상 생산하지 않고 핵을 더 이상 만들지 않는 것으로 결론 날 가능성이 높으며, 종래에는 북미동맹의 가능성도 있을 수 있다.
미국, 중국은 북한이 신경쓰이는 면도 있겠지만, 북한 보다는 미국, 중국 서로가 더 신경쓰일 수 밖에 없다. 북한의 핵이 미국만 겨냥하지 않고 오히려 중국을 겨냥하는 상황이 온다면 미국이 그 보다 좋을 수 있을까?
물론 중국은 그런 상황이 군사적으로는 그야말로 재앙일 수 밖에 없다. 안 그래도 미국이 전세계적으로 중국을 포위해 놓은 상황인데 북한의 핵이 베이징을 겨냥한다면 중국은 북쪽에는 역사적으로 사이가 않좋았던 러시아와 동서남쪽 미국과 동맹을 맺은 국가들에 의해 군사적으로는 포위된다.
모든 것의 본질적인 핵심은 미국의 Pivot to Asia! 전략이자 정책이다. 그리고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전략도 한 몫하고 있다. 단지, 방법적인 면에서 크게 보면 북한을 정복해서 자기 영토로 만들거나 괴뢰정부를 세우는 것, 두 번째로 북한을 자기 편으로 만들어서 끌어들이는 방법이 있을 수 있는데,
아마도 미국이 후자쪽으로 확실하게 방향을 틀 수 있는 계기가 이 번 종전협정 성사여부에 달렸다고 볼 수 있다.
아무튼 이런 때에 여운형 선생님이라면 어떤 계획을 실천하셨을까?
담대한 그 분의 성격이라면 벌써 어떻게 해서든 월북해서 김정은이랑 몇 번을 만났을지도 모르겠다.
https://youtu.be/y38NvLGa4BY
https://youtu.be/eGTZ-BXogKA
최상천의 사람나라 10강 여운형의 길
1) 시작 : 국채보상 금연운동(1906), 동광학교 설립(1907)
2) 독립운동 구심체 건설 : 신한청년당(1918. 11~1922)
(1) 여운형, 윌슨 특사 크레인의 강연 참석과 협조 요청(11.11)
((1)) 파리 평화회의 협조 요청
((2)) 윌슬에 독립청원서
(2) 신한청년단(당) 결성
((1)) 여운형(총무간사-당수), 장덕수, 조동호 등 당원 3,40명으로 결성
((2)) 김규식 파견 결정-대표신임장에 여운형 서명
((3)) 신한청년당은 학국 최초의 근대정당
(3) 신한청년당의 역할
((1)) 젊은 독립운동가 결집 : 국제정세에 밝고 기회력을 가진 신진인사들
((2)) 독립운동 구심체 역할 : 독립운동 기획, 지원
((3)) 일본 2.8 독립선언, 삼일운동 유도
3) 대한민국임시정부 건설(1919.4.11)
(1) 정당 건설 주장
(2) 국호 '대한' 반대 : 망한 나라(대한제국,1897~1910) 이름
(3) 임시헌장(제8조)에 "구황실을 우대함" 조항 반대
동지들은 대한문 앞 곡성을 잘못 들었다. 망국의 울음을 아무 때나 울면 잡혀갈 처지였기 때문에 참고 있다가 핑계김에 기회를 얻어 운 것이오, 황실 그 자체를 생각한 울음이 아니었던 것이다.(이기형, 39쪽)
(4) 임정에 냉담
((1)) 봉건성, 파쟁, 독립운동 부실---유명무실, 하나의 독립운동단체로 전락
((2)) 김구 : '폭탄 투척' 한방으로 존재 부각---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3)) 여운형은 초기 외에는 임정에 참여하지 않고 거류민단장으로 독립운동
4) 일본 초청 방문(1919.11), 천황국가의 심장부에서 민주공화국 건설을 선포하다.
(1) 왜 하필 여운형(34세)을 초청했을까?
(2) 활동 : 조선독립과 평화공존 웅변***국빈 수준의 접대
((1)) 호방+담대한 웅변으로 일본 고위층 압도, 독립운동 정당성 설파 : 척식국장관 古賀, 육군대신 田中義一, 조선총독부 정무총감 수야(水野鍊太郞), 체신대신 야전(野田)
척식국장관 古賀廉造의 반응
그대의 의지에 나는 동의한다. 내가 만일 조선에 났었으면 나도 그대와 같이 하겠다. 만일 뜻대로 되지 아니하며 총독부에 불을 질렀겠다. 내 계책이 성공하지 않은 데서 그대에게 가장 높은 경의를 가지고 있다.
몽양이 동경을 떠날 때에 古賀는 친히 나와서 "여운형 만세!"를 불러주었다.
((2)) 제국호텔 강연(11.27) ; 총독부 악정 폭로, 조선독립과 동양평화 정당성 역설, 천황제와 반대되는 민주공화국 건설 주장---일본 조야에 엄청난 충격과 반향
연설 요지(36~37쪽)
우리의 건설국가는 인민이 주인이 되어 인민을 다스리는 국가일 것이다. 이 민주공화국은 대한민족의 절대적 요구요 세계 대세의 요구다.
((3)) 新人會(사회주의연구회)의 환영회 : 동경제대 길야(吉野作造) 교수 등 100여명 참석
인사말 : 조선독립운동은 일시적인 감정적 폭발이 아니다. 이는 오직 조선인의 영구적 자유와 발전을 위해서 이며 나아가서는 동양과 세계의 영원한 평화를 위해서이다.
연회는 시종 화기애애한 가운데 진행되었다. 폐회에 앞서 대삼(大衫榮)의 선창으로 "조선독립 만세!"를 불렀다.
(3) 영향 : 총리대신(原敬), 천황 명담 취소-하라케이(原敬) 내각, '여운형 내각' 붕괴
5) 3년 옥고와 조선중앙일보 사장(1933.3~1936.8) : 손기정 선수 일장기 말살사건
우가키 비판 일화(여연구, 60~61쪽), 필독
6) 끝까지 일제협력을 거부한 두 사람 : 여운형, 안재홍
7) 특징
(1) 위풍당당한 독립운동 : 적의 심장부에서 일본제국 규탄, 조선독립 필연성, 동양평화공존 웅변---독립-평화를 위해서는 적과도 연대, 대화
(2) 독립운동 기획, 지원의 구심 역할 : 신한청년당
(3) 인정과 연대
1) 건국 준비
(1) 중일전쟁(1937) 일으키자 패망 예상
(2) 조선건국동맹(1944.8.10), 농민동맹 결성(1944.10.8)
2) 건국준비위원회 결성(1945.8.15~9.7)
(1) 여운형
(2) 건국준비위원회
((1)) 신속한 대응
((2)) 위원장 여운형(민주좌파), 부위원장 안재홍(민주우파)
((3)) 좌우통합 민족연합전선
((4)) 불과 15일 사이에 전국 145개 지역 건준 실질적 행정 담당
((5)) 한국인의 자치능력, 건국능력 확인
(3) 인민자치 권력의 역사 : 정말 경이로운 역사
((1)) 동학혁명 후 집강소 : 호남
((2)) 건국준비위원회, 인민위원회(전국 모든 도, 시, 군에 설립) : 전국 규모
((3)) 5월 광주
^한국민족의 자치능력, 자치 기업, 민주공화국, 주권자공동체 가능성 확인
^외제+압잡이=독재/살육---코메리카, 수령가국
3) 조선인민공화국(1945.9.6) 전환과 실패
((1)) 동학혁명 후 집강소 : 호남
((2)) 건국준비위원회, 인민위원회(전국 모든 도, 시, 군에 설립) : 전국 규모
((3)) 5월 광주
^한국민족의 자치 권력, 자치 기업,
(1) 미군 진주에 앞서 건국준비위원회->조선인민공화국으로 전환
(2) 우파 반대/이탈로 좌파정권으로 전락
(3) 미군정의 불인정, 탄압으로 실패
3. 통일민주국가 추구
1) 모스크바 결정 지지
2) 좌우합작, 민족연합 : 통일민주국가 추진한 유일한 인물
***미소합의, 좌우협력이 통일의 길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인식한 유일한 인물
***여운형 평양행(1946, 5차례), 김구 평양행(1948.4)의 차이
3) 죽음
(1) 반공테러집단, 분단국가 추진 반공세력의 공적 1호
(2) 1947년 7월 19일 피격 운명
((1)) 경찰은 범인을 알면서도 수사 외면
((2)) 미 군정은 도리어 여운형 집 압수수색
4. 아주 특별한 사람 여운형(1986. 4.22~1947. 7 .19)
1) 나부터 혁명
(1) 정직한 소년(15세) : 예배 불참자 손들라고 하자 정직하게 손듬-방과 후 한 시간 자습 처벌-배재학당 자퇴
(2) 관립 우체학교 자퇴(1905?)
((1)) 을사조약에 따라 통신원(通信院)이 일본에 넘어가자 졸업 1달 앞두고 자퇴(월급 27원 관리직 포기)
((2)) 아버지의 복학 요구도 거절
(3) 금연과 단연운동(1906) : 국채보상운동에 호응하여 단연국채보상기성회 조직하고 단연
그대들을 다 해방시키겠다. 지금부터 각기 자유롭게 행동하라. 이제부터 상전도 없고 종도 없다. 그런 고로 '서방님' 이니 '아씨' 니 하는 칭호부터 싹 없애라. 오직 인간은 날 때부터 평등하니, 주종지의(主從之義)는 어제까지의 풍습이요. 오늘부터는 그런 낡은 껍데기를 벗어 던지고 제각기 알맞은 직업을 찾아가라.(이기형, [몽양 여운형], 23쪽)
3) 인정과 연대 정신 : 중국 공산당, 국민당 특별당원
(1) 중국혁명에 참가 : 중국혁명 후 조중연합 항일투쟁 기대
(2) 국공합작 참여 : 손문의 국민당
5. 여운형의 길
1) 인간해방-독립 사상가
(1) 동학 집안
((1)) 조부 여규신 : 동학도, 북벌=중국 토벌론자, 여운형에게 가장 큰 영향
((2)) 종조부 여규덕 : 단양 집에서 *용담유사* 간행
((3)) 숙부 여승현 갑오농민전쟁 참여
((4)) <사람=한울님> 사상이 상당한 영향
(2) 철학과 역사관 : 인간해방과 독립
((1)) 인본적 마르크스주의 영향 : 고려공산당 가입, *공산당선언* 최초번역(1920):*공산주의 ABC*,*영국에서의 노동조합운동* 등 번역---계급 타파, 착취 청산, 인간존엄 회복, 노동자 해방, 민주주의, 공동체 이해
^"부르주아지는 인간의 존엄을 교환가치로 녹여 버렸고, 인간의 자유를 단 하나의 파렴치한 상거래의 자유로 대체했다"
^"자본주의 아래에서 자유란 상거래의 자유, 판매와 구매의 자유일 뿐이다"
^"공산주의는 누구에게도 생산물을 취득할 힘을 빼앗지 않으며 다만 이런 취득을 통해 타인의 노동을 자신에게 종속시키는 힘을 박탈할뿐이다.
^"노동계급 혁명의 첫걸음은 노동계급이 지배력을 장악해서 민주주의를 확립하는 것이다"
^"노동자계급이 권력을 획득한다면 각인의 자유로운 발전이 만인의 자유로운 발전의 조건이 되는 연합(공동)체가 등장할 것이다"
^"공산주의자는 모든 나라 민주주의 정당들의 단결을 위해 노력한다"
((2)) 국가 해방/독립만 아니라, 여성해방, 노동자해방/계급해방 동시 추구
주린 자는 먹을 것을 찾고 목마른자는 마실 것을 찾는 것은 자기의 생존을 위한 인간 자연의 원리이다.
이것을 막을 자가 있겠는가! 일본인이 생존권이 있다면 우리 한민족이 홀로 생존권이 없을 것인가! 일본이 생존권이 있다는 것은 한국인이 긍정하는 바이요, 한인이 민족적 자각으로 자유와 평등을 요구하는 것은 신의 허락하는 바이다.
일본 정부는 이것을 방해할 무슨 권리가 있는가. 이 세계는 약소민족해방, 부인해방, 노동자해방 등 세계개조를 부르짖고 있다. 이것은 일본을 포함한 세계적 운동이다. 한국의 독립운동은 세계의 대세요, 신의 뜻이요, 한민족의 각성이다.(이기형, *몽양 여운형*, 57쪽)
2) 독립혁명가, 민주혁명가 : '나-너-우리' 사상
(1) 나부터 혁명 : 나의 독립
(2) 너의 해방과 독립 지원 : 노비 해방 실천
(3) 국가 독립, 여성 독립, 노동자 독립, 개인 독립
3) 사심 없는 인격자
여 씨의 주장 가운데는 확실히 하나의 침범하기 어려운 정의의 섬광(閃光)이 보인다. (중략) 그는 한낱 젊은 신사로서 그 견식에 있어서, 그 품격에 있어서 나는 드물게 보는 존경할만한 인격을 그에게서 발견했다. 지나,조선,대만 등지의 많은 사람들과 회담했지만, 하나의 교양 있는 존경할 인격자로서 여운형 씨와 같은 분은 그 중 가장 뛰어난 한 분 이라는 것을 단언한다.(吉野作造(동경대 교수), *中央公論*, 1920년 1월호)
4) 아! 여운형 : 20세기 孟子
(1) 사람 존중 : 누구의 생존권, 인격성, 자유와 평등, 독립성도 부정하지 않는다---일본의 권력조차 대화, 설득
(2) 인품, 기개, 능력, 대의 헌신, 시대정신, 실천력, 대인의 풍모
미군정 장관 아놀드의 고문 직 제안(45. 10. 3)을 받고 거절하면서 내가 인민공화국을 세웠으니 그대가 나의 고문이 되어야 옳을 일이다.
내가 그대의 고문이 되는 것은 주객이 뒤집힌 것이다.
(3) 적들도 감복, 신뢰, 존경 ; 하지, 아놀드 랭던 리차드 로빈슨(미국의 배신 저자), 일본 고위 관료들
(4) 국제 활동 : 손문, 레닌, 트로츠키, 장개석, 모택동, 일본의 전현직 총리
여운형은 단순한 독립운동가, 사회주의자, 진보적 민주주의자가 아니다.
그 어떤 찬사로도 표현하기 어려운 '완성된 인격', '인류적 인간' 여운형의 인간해방/독립 사상, 민주대통합노선은 반드시 계승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