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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8월 3일 토요일

최상천의 사람나라(3-31) 아태쟁패 7 한일역사전쟁-민주파, 국가파, 양다리

https://youtu.be/a3eHaRKkkpc


최상천의 사람나라(3-31)
2019-7-31

아태쟁패 7
한일역사전쟁-민주파, 국가파, 양다리

1. 강제노동 개인 배상, 독일의 경우

-민주독일의 수준-

통일 독일의 과거 청산
Friedrich-Ebert-Stiftung, Korea Office
~전략~
독일정부는 이제까지 나치정권의 피해자에게는 약 1400 억 마르크(일부 강제노동자에
대한 보상금 포함)라는 적지 않은 액수의 보상을 해왔다. 그러나 유독 강제 징용된
외국인 노동자들이 요구하는 체불된 임금과 강제징용에 대한 보상문제에 대해서는
법적 근거가 부재하다는 이유를 들어 이를 거부해오고 있었다. 그래서 외국인
강제노동자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전후 보상에서 누락되어 왔으며, 그리고 예전에는
논의조차 금기시되던 이들에 대한 보상문제가, 특히 통일 이후, 어떻게 정치적인
타결에 이르게 되었는지 살펴보는 것은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이라 하겠다.

~후 략~

출처: http://www.fes-korea.org/media/German%20Unification/Zwangsarbeitern_2000-06.pdf

독일은 일본처럼 하지 않았다

~ 전 략 ~

이와 같은 독일의 배상 정책에도 불구하고 집시와 동성애자, 탈영병, 강제노동자는 오랫동안 수혜자가 되지 못했다. 1980년대 후반에야 비로소 이들에 대한 학문적 관심이 증대했고 피해 보상에 대한 주장이 제기됐다.

~ 중 략 ~

독일 통일과 냉전 해체 뒤인 1990년대 독일에서는 강제노동자 문제에 대한 정치적 관심이 증대했고 물질적 보상이 요구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이 문제 해결에 결정적 자극을 준 것은 미국 내의 움직임이었다. 미국의 유대인 피해자 단체는 미국 정부의 지원으로 독일 기업들에 집단 보상 소송을 준비했다. 독일 기업들은 그 법적 분쟁을 꺼렸다. 나치 시기 강제노동자에 대한 보상 문제는 곧 독일과 미국뿐 아니라 동유럽에서도 정치적 이슈로 등장했다.

~ 중 략 ~

곧 재단 설립과 활동 방향, 보상의 기준과 규모가 정해졌다. 2001년 6월15일 처음으로 보상금이 지급됐고, 2007년 6월12일 공식적으로 지급 완료가 선언됐다. 230만 명 이상이 보상금 지급 심사를 신청했고 그중 약 165만 명에게 지급 결정이 내려졌다.

독일 연방정부와 기업들은 각각 절반을 부담해 100억마르크(50억유로, 약 7조9700억원)의 기금을 마련했다. 독일 기업들은 납부를 강요받지는 않았지만, 사회적 책임에 근거해 자발적으로 기금을 기부했다. 특히 나치 시기에 아직 존재하지도 않았던 전후 신생 기업들이 기금을 납부하기도 했다. 그 비율이 전체 6544개의 기업 중 약 40%에 달했다. 1970~80년대 이래 본격화된 과거사에 대한 집단적 학습 과정은 기업가와 경영인들에게도 크게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중략~

165만7천 명의 수급권자에게 총 43억1600만유로(약 6조3070억원)가 지급됐다. 그것으로 이제 독일은 나치 범죄에 대한 배상을 매듭지었다. 나치의 강제노동과 관련해서는 어떤 개별적 법적 소송도 더 이상 가능하지 않도록 국제적 합의가 이루어졌다.

~중략~

20세기 전반 나치 시기 강제노동자에 대한 보상을 둘러싼 국제적 논의는 그 세기가 끝나기 며칠 전에 일차 합의에 도달했다. 정치 지도자의 시간이 왔다. 1999년 12월17일 당시 독일 대통령 요하네스 라우는 공식 성명에서 다음과 같이 발표했다.

“재단을 발의한 독일 국가와 기업은 과거의 범죄로 인해 발생한 공동의 책임과 도덕적 의무를 다할 것을 선언합니다. 노예노동과 강제노동은 단지 받아야 할 임금을 뺏긴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납치, 근거지 상실, 권리 박탈 및 잔인한 인권유린을 의미합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돈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님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강제노동자들은 자신들의 고통이 고통으로 인정받기를 원하고 자신들에게 가해진 불의가 불의라고 불리기를 원합니다. 오늘 저는 독일의 지배하에서 노예노동과 강제노동을 수행해야만 했던 모든 사람들을 기억하며 독일 민족의 이름으로 용서를 구합니다.”

~후략~

출처: http://h21.hani.co.kr/arti/world/world_general/41069.html


2. 개인청구권 인정의 역사

1) 피해자들의 침묵, 고난의 행군

(1) 좌우 공존 민주주의 시기
((1)) 일본에 강제저축 통장-명부: 확인 6조원(2012년 현재가)
((2)) 일본 시민운동: 강제동원, 위안부, 한인 원폭 피해자 지원

(2) 코메리카=대한민국: 미국의 반공기지
((1)) 오카모토: 개인청구권 박탈, 뇌물 $6,600만(22%)
((2)) 역대 정권, 일제 식민지배 피해 개인청구권 부정
((3)) 청구권 요구: 빨갱이 취급, 외면-지지자 전무

2) 대한민국 헌법재판소(2011.8.30)

헌법재판소는 지난 2011년 8월 30일 청구인들이 일본국에 대해 가지는 일본군위안부로서의 배상청구권이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이하 '이 사건 협정')'으로 소멸되지 않았으며, 피청구인의 부작위가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중략~

일본국에 의해 광범위하게 자행된 반인도적 범죄행위에 대해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에 대해 가지는 배상청구권은 헌법상 보장되는 재산권일 뿐만 아니라, 무자비하고 지속적으로 침해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신체의 자유를 사후적으로 회복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중략~

이러한 점을 기반으로 헌법재판소는 "기본권 침해 구제의 절박성이 인정되며 이 사건 협정의 체결 경위 및 그 전후의 상황, 일련의 국내외적인 움직임을 종합해 볼 때 구제가능성이 낮다고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국제정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전략적 선택이 요구되는 외교행위의 특성을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피청구인이 부작위의 이유로 내세우는 '소모적인 법적 논쟁으로서의 발전가능성'이나 '외교관계의 불편'이라는 매우 불분명하고 추상적인 사유가 기본권 침해의 중대한 위험에 직면한 청구인들에 대한 구제를 외면하는 타당한 사유라거나 고려돼야 할 국익이라고 보기는 힘들다"고 판단했다.

이에 헌법재판소는 "이 사건 협정 제3조에 의한 분쟁해결 절차로 나아가는 것만이 국가기관의 기본권 기속성에 합당한 재량권 행사라 할 것이고, 피청구인의 부작위로 인해 청구인들에게 중대한 기보권의 침해를 초래했다 할 것이므로 이는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결했다.(대한변협신문, 2013.10.28)

출처: http://news.koreanbar.or.kr/news/articlePrint.html?idxno=9803

(1) 코메리카=대한미국, 가짜 대한민국
((1)) 박정희 정권 불법 권리박탈: 한일 '합의' 과정에 사전 위임도 사후 동의도 없음
((2)) 역대 정권: 불가침, 불가탈의 개인청구권 멋대로 부정
((3)) 반역: 일본(주권 유린 가해자)에게 면죄부

(2) 아! 대한민국: 헌법재판소 8.30 판결
'대한민국'이 이상적 나라라면, 주권자(위안부)의 기본권(개인 청구권) 실현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정상

3) 대한민국 대법원 판결(2012.5.24)

[대법 “日帝 강제징용 배상해야”]“개인 청구권은 1965년 한일협정으로 소멸된 것 아니다”
동아일보입력 2012-05-25 03:00수정 2012-05-25 10:01

대법, 징용배상 첫 판결… 日최고재판소 판결 뒤집어

대법원의 24일 판결은 일제강점기 식민지배로 피해를 본 대한민국 국민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여러 소송에서 승소 가능성을 인정한 최초의 사법적 판단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주심인 김능환 대법관은 “건국하는 심정으로 이 판결을 썼다”고 주변 지인에게 털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 후 략 ~

출처: http://www.donga.com/news/article/all/20120525/46505087/1


[대법 “日帝 강제징용 배상해야”]“대한민국 사법 주권 회복한 날”
동아일보입력 2012-05-25 03:00수정 2012-05-25 03:00

■ 12년 소송 이끈 최봉태 변호사

“일제 피해 구제를 위해 싸워온 20년 변호사 인생에서 가장 값진 날입니다.”
~중략~

최 변호사는 1992년 개업한 뒤 일제 강제징용 및 위안부 피해자를 위한 활동을 해왔다. 그는 “도쿄대 유학 시절 일본 시민과 변호사들이 한국인보다 적극적으로 피해자 구제에 나서는 모습을 보고 부끄러움을 느낀 것이 결정적 계기였다”고 말했다.

~후략~

출처: http://www.donga.com/news/article/all/20120525/46505003/1

4) 대한민국 대법원 판결(2018.10.30)

"국가 간 협정으로 개인청구권 소멸 못하는 건 국제법 상식"

~전략~

대법원은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일본 전범 기업의 배상 책임을 물렸다. 일본이 이를 문제 삼으면서, 일 제국주의 시절 피해를 본 우리 국민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소멸되는지에 대한 오래된 논쟁이 재현됐다. <조선일보> 등 우리나라 보수 우파 언론들까지 일본 편에 가세하면서 혼란스러운 모양새지만, 일본변호사협회 회장을 지낸 우쓰노미야 겐지는 우리 대법원 판결을 지지한다. 그가 왜 개인청구권이 국가 간 협정으로 소멸되지 않는지 일본 법원 판례 등을 근거로 설명하는 글을 보내왔다.

~중략~

강제징용 피해자 등 개인의 손해배상청구권을 국가 간 협정으로 소멸시킬 수 없다는 것은 현재 국제인권법상 상식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지금까지 일본 정부와 일본 최고재판소도 ‘한일청구권협정에 의해 개인의 실체적 손해배상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다’고 해석해왔다.

~중략~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소송을 낸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임금을 받지 못한 채 감전사할 수 있는 위험이 큰 용광로에 코크스(골탄)를 투입하는 등 가혹하기 그지없는 위험한 노동을 강요당했다. 제공받은 식료품은 극소량의 변변치 않은 것에 불과했고, 외출도 허용되지 않았고 도주라도 하면 체벌당하는 등 그야말로 열악한 환경에 있었다. 이것은 강제노동(ILO 제29호 협약)이나 노예제(1926년 노예제조약)에 해당하는 것으로 중대한 인권침해다.

~후략~

출처: http://h21.hani.co.kr/arti/special/special_general/47357.html


새로운 상상력을 자극한 ‘일제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
김민철 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

10월 30일, 한국대법원은 마침내 긴 세월을 끌었던 사건에 마침표를 찍었다. 신일철주금이라는 일본의 글로벌회사에 일제 강점기에 있었던 강제동원·강제노동의 피해자에게 손해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중략~

과거청산 또는 과거극복의 모범국이라 불리는 독일조차 독일 정부와 기업이 기금을 내어 ‘기억, 책임 그리고 미래’재단을 만들어 강제동원 피해자를 구제할 때도 ‘법적 책임’을 부정했다. 그런데 한국 대법원이 일본 기업에게 강제노동에 대한 배상책임을 물었다. 개인의 권리 구제라는 측면에서 국제법상으로도 매우 획기적인 판결이 나온 것이다. 국가나 전체의 이름으로 개인의 권리를 억압하던 힘이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는 징후라 하면 너무 과한 평가일까.

3. 개인청구권 인정 판결, 한국 민주주의 도달점

1) 일본 좌우공존 민주주의
(1) 강제저축 통장, 명부, 위탁금 보관
(2) 시민운동, 한인 개인 피해자 지원\
((1)) 정보 청구, 소송 지원, 시위, 홍보
((2)) 아름다운 사람들: 인류적 인간

2) 오카모토의 국가주의 폭력
(1) 개인청구권 불법 강탈->봉쇄->폭력제압
(2) 3억에 통, 6,600만원 뇌물(22%)

3) 불가탈 개인청구권 인정: 민주주의 판결
(1) 한국 정부(박정희~문재인)
((1)) 1965년 한일협정으로 끝난 일
((2)) 아베와 100% 같음: 국가주의

(2) 시민운동(1987~): 아름다운 사람들
(3) 헌재, 사법부: 독일 능가 민주주의 판결
((1)) 개인=주권자, 기본권은 불가침 불가탈 권리, 개인청구권=기본권(재산권, 2012)
제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2)) 국가=의무체, 기본권행사 도울 의무, '부작위는 위헌'(헌재)

4. 혁명적 변화: 반공독재국가->민주국가

1) 1919 대한민국=민주공화국 선언

2) 1948 코메리카
(1) 간판=대한민국
(2) 실제-반공조폭체제

3) 1987년 민주화 시작
(1) 국가민주화, 자유화(자본) 수준
(2) 경제: 독점 강화
(3) 매->돈 앞에 장사 없는 나라

4) 2008 인식의 전환: 헌법 제1조 노래
(1) 여중/여고생 선도
(2) 태극기(국가)에서 헌법(주권자)으로
(3) 헌법 제1조 노래

5) 2017 촛불혁명
(1) 주권자혁명: 국가권력, 자본권력 제압
(2) 주권자의식 20% 정도

6) 개인청구권 인정 민주 판결: 민주화 산물

5. 한일역사전쟁: 민주주의 VS 국가주의

1) 한국 헌재-대법원 민주주의 판결
(1) 개인=주권자
((1)) 개인청구권=기본권(재산권, 2012)
((2)) 기본권은 불가침 불가탈 권리
제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2) 국가=의무체
((1)) 주권자의 기본권행사 도울 의무
((2)) '부작위는 위헌'(헌재)

2) 전쟁의 시작: 아베의 도발

(1) 문제 인식: 국가주의
((1)) 일제 식민지 개인 피해자 문제: 1965년 한일협정으로 끝
((2)) 국가 간 결정->개인청구권 소멸

(2) 아베-국가주의 세력
((1)) 아베정권, 일본 우익
((2)) 코메리칸-토착왜구: 자한당+조중
((3)) 미국은 후견

(3) 전쟁 도발-한국 공격
((1)) 아베 정권: 경제적 보복-수출규제, 화이트리스트 삭제
((2)) 코메리칸-토착왜구: 아베 지원, 문 공격, 한국 항복 요구
((3)) 미국은 바다 건너 불구경

3) 한국-민족민주세력 반격

(1) 문제 이식: 민주주의
((1)) 개인청구권은 불가침의 인권=기본권
((2)) 배상 당연

(2) 반제 민족민주세력
((1)) 한국 범민주세력: 한국 시민사회
((2)) 한국 반일제 범민족세력
((3)) 일본 민주세력: 아베 비판
((4)) 국제사회: 자유무역 옹호

(3) 반격
((1)) 한국인 의지 세계 과시: 일제 불매, 여행 안 가기
((2)) 치명타: 미국 자본-기업의 아베 융단폭격

4) 한일역사전쟁->(민주주의 대 국가주의) 국제전

(1) 일본-국가주의 승리
((1)) 한국 민주주의 패배, 국가주의 돌아갈 것
((2)) 동북아시아 전체가 국가주의 생지옥
중국 일당독재->시진핑 1인독재
조선 수령체제: 전체주의
일본 급속 우경국가

(2) 한국 승리
((1)) 한국: 세계적 위상 민주국가
((2)) 일본: 아베 정권 교체-민주화 가능성
((3)) 동아시아에 민주화 바람: 홍콩 등

6. 슬픈 내전: '토착왜구' 대 양다리

1) 도착증 '토착왜구'
(1) 아베꼬봉, 조국 공격 선봉(오카모토 후예)
(2) 반민족, 반국가, 반민주
((1)) 반민주: 피해자 개인청구권 부정
((2)) 반국가: 대법 판결 부정
((3)) 반민족: 아베-일본 우익 추종, 옹호

(3) 주적: 문재인 정부

2) 양다리

(1) 양다리 해결법: 1+1 해법

(2) 한일 역사전쟁->문재인 정권 수호전쟁
((1)) 한일 역사전쟁->(아베의 문정권 교체 작전)으로 왜곡, 선동
((2)) 문정권 수호전: 항일전->토착왜구 토벌전

(3) 가짜 항일: 민족적 극일운동에 편승
((1)) 시민의 불매운동: 7.1 발표 후 곧바로 시작
((2)) 불매운동, 여행 안가기 큰 성과: 7월 4,5일
((3)) 문재인(7.12-이순신), 조국(7.13-죽창가) 시민운동 편승
((4)) 촛불 때와 똑 같은 양다리-편승=과실

민주연구원 보고서 "한일 갈등, 총선에 긍정적" 논란
'총선영향' '친일공방' 등 <KSOI> 미공표 조사결과 인용해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원장 양정철)이 일본의 수출규제로 촉발된 한일 갈등이 내년 총선에서 민주당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분석한 보고서를 작성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을 자초했다.

30일 SBS <8 뉴스>에 따르면, 민주연구원은 이날 '한일갈등에 관한 여론 동향' 보고서를 작성해 당 소속 의원 128명 전원에게 이메일로 발송했다.

~ 중 략 ~

보고서는 이에 대해 "­ 우리 당 지지층에서는 압도적으로 친일 비판에 공감했다"면서 "스윙층인 50대, 중도에서 상대적으로 공감이 많지만 무당층에서는 적다"고 지적했다.

~ 후 략 ~

출처: https://www.viewsnnews.com/article?q=171628

(4) 주적: '토착왜구'
일본은 주적이 아니다.
일본은 지지율 올려주는 고마운 나라

곧 불매운동 비웃으며 일본과 손잡을 것



출처 : 최상천의 사람나라 BAND

2019년 7월 25일 목요일

최상천의 사람나라(3-26) 아태쟁패 2 박정희의 한일협잡-미일꼬붕

https://youtu.be/QPoyJp4n4fQ



최상천의 사람나라(3-26)
2019-7-18

아태쟁패
박정희의 한일협잡-미일꼬붕


만주신문 1939년 3월 31일 기사


문명자, 내가 본 박정희와 김대중(1999) 중


동경대학출판부 발행(2005)

1. 한일협정, 미일한 반공전선 작전

1) 미국패권 아태전략: 미일동맹+코메리카

2) 핵심 작전: 한일협정

3) 안성맞춤 박정희

(1) 일본인 오카모토

(2) 3대 배신자 활용
((1)) 민족 배신: 충성혈서, 민족세탁(오카모토 미누루), 황군장교
((2)) 국가 배신: 5.16 쿠데타
((3)) 인륜 배신: 친구 배신, 몽땅 배신, 200명 권력형 성폭행

(3) 미국의 지원, 돈이 급한 박정희 정권


▲ 영등포고 학생들의 한일회담반대운동 관련 신문 기사(경향신문, 1964. 3. 27)1964년 3월 27일 900여 명의 영등포고 학생들은 중앙청 앞까지 진출하여 박정희 군사정권의 굴욕적 한일회담 추진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 경향신문사

출처: http://m.ohmynews.com/NWS_Web/Mobile/at_pg.aspx?CNTN_CD=A0002523366&CMPT_CD=MSEB17#cb

(1) 식민지 배상: 미얀마, 인도네시아, 필리핀, 남베트남(월남)
(2) '충성혈서 오카모토 미노루'다운 결정
(3) 쿠데타정권 구축->돈(자금) 확보에 혈안



2. 오카모토->박정희의 합일협정 협잡

1) 침략-식민지 지배 배상 아닌 경제 지원

일본이 정식으로 침략 피해에 대해 배상한 것은 이 네 나라 뿐이다. 다른 나라에 대해서는 경제 원조를 하거나 무상 경제 협력을 하는 것으로 대신하였다. 한국에 대해서는 한일기본조약을 통해 경제원조를 하는 것으로 하였다.(오구마 메이지, 한철호 역, 일본이라는 나라(책과 함께, 2007) 99~100쪽, 위키백과 재인용)

https://ko.wikipedia.org/wiki/%ED%95%9C%EC%9D%BC%EA%B8%B0%EB%B3%B8%EC%A1%B0%EC%95%BD

2) 한일공조, 개인 청구권 강탈
(1) '위안부'(성노예)-강제징용-강제노동 등
(2) 일본은 개인 배상 제안, 한국은 이를 거부하고 국가 배상만 요구(명부)
(3) 개인 청구권 강탈 주범은 박정희

3) 35년 강점, 약탈, 전쟁동원-몰살 대가: 3억불

4) 일본기업 뒷돈 6,600만불

박정희 정권 일본 기업으로부터 6,600만 달러 불법 자금 수수

~ 전 략 ~

  이 중에서 가장 주목을 끄는 문건은 ‘한일관계의 미래’ 라는 제목의 1966년 3월 18일자 미 중앙정보국 특별보고서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 기업들이 1961-1965년 사이 당시 민주공화당 총 예산의 2/3를 제공한 바, 각 개별 기업의 지원 금액이 각각 1백만에서 2천만달러에 이르며 6개의 기업이 총 6천6백만 달러를 지원했다.…민주공화당은 또한 일본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한국기업으로부터도 지불을 받았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정부방출미 60,000톤을 일본에 수출하는 과정에 개입한 8개의 한국회사가 민주공화당에 115,000 달러를 지불했다.’는 것이다.

~ 후 략 ~

출처: https://www.minjok.or.kr/archives/76688

(1) 1961~1965년 일본기업(6개) 뒷돈
(2) 일본->한국(3억)의 22%(뇌물 성격)
(3) 개인청구권 막고, 3억에 퉁친 이유

5) 일본 뇌물로 친일 군사독재정권 핵심기관 구축
(1) 중앙정보부 창설
(2) 민주공화당 창당

3. 미국, 미일한-아태반공전선 구축(1965)

1) 한일협정->미일한 반공전선 1965

(1) 아태 반공야쿠자체제
야쿠자 유사한 가부장적 위계질서
((1)) 미국: 오야붕(親分, 아버지)
((2)) 일본: 샤테이가시라(舎弟頭)
두목과 형제관계를 맺은 자들 중에서 우두머리라는 뜻. 와카가시라와 비슷한 간부급이기는 하나 실질적으로 약간 거리가 있는 직책이다. 와카가시라가 실질적인 조직 운영을 담당한다면, 샤테이가시라는 쿠미쵸(두목)의 상담역에 가깝다.
((3)) 한국: 꼬붕(子分, 자식)

(2) 코메리카: 미국꼬붕->미일꼬붕
((1)) 미국꼬붕: 영토=미군기지, 군대=용병-예속군
((2)) 일본꼬붕: 종속 경제

(3) 꼬붕국가: 반공독재-재벌독점체제

2) 박정희 결정적 공로

(1) 반대세력 폭력 제압

(2) 3개월에 미국 미션 성공(1965.5월~8월)
((1))월남전 전투병 파병
((2)) 한일협정 체결

(3) 미국의 박정희 활용 대성공

3) 오카모토의 저주->아베왜란

출처: 최상천의 사람나라 BAND

2018년 10월 14일 일요일

최상천의 사람나라 시즌 1 제14강 대박전쟁 1 광복의 꿈 vs 일본의 개-'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군의 일생 1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군의 일생 1


박정희(朴正熙)에서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로 그리고 다시 박정희(朴正熙)로!


교사에서 일본군장교로 돌아올 때는 다시 광복군으로!


일본군가에서 독립군가로!


클릭하면 최상천의 사람나라 시즌 1 14강을 볼수있습니다.



최상천의 사람나라 14강

대박전쟁 ((1)) : <광복의 꿈 VS 일본의 개>

1. <대한민국 對 박정희>, 슬픈 주권전쟁

1) 세 가지 주권전쟁

(1) 1차 주권전쟁 : 국가 간 주권전쟁, <제국주의 VS 민족국가>
(2) 2차 주권전쟁 : <국가주권주의/독재자/군주주권 VS 인민주권(사람주권)>
(3) 3차 주권전쟁 : 기업주권 문제 <자본주권(돈 주권) VS 사원주권(사람주권)>


2) 한국의 1차 주권전쟁 : <제국주의 對 민족국가/주권국가>

(1) 한일 주권전쟁 : <대일본제국 VS 한민족>
(2) 결말 : 미+소의 분할점령->분단체제(위성국가, 독재국가)


3) 남, 북의 2차 주권전쟁 : <독재자 對 인민주권>

(1) 남 : <반공독재자 VS 대한민국(인민주권)> : 3대 독재자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2) 북 : <수령독재 VS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인민주권)> : 김일성 가문(3대 세습)


4) 전개, 현재

(1) 1차 주권전쟁은 최악의 실패 : 분할점령->분단독재체제

(2) 2차 주권전쟁

((1)) 남은 민주화 성공->제3의 황금시대(1998~2007)->반동 이명박근혜 정권
((2)) 북은 천황체제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김일성 신국


5) 1, 2차 주권전쟁에서 최악의 적은?

(1) <대일본제국 VS 한민족> 1차 주권전쟁에서는 대일본제국에 충성혈서를 바치고, 스스로 '일본의 개'가 된 자

(2) '박정희의 난'(5.16 반란)으로 4.19 민주혁명을 뒤엎고 대한민국을 전복한 반란 수괴

(3) 1972년 12월 27일, 김일성과 손을 잡고 대한민국을 일본제국=천황체제(유신체제, 유일체제)로 변조한 자

(4) 배반(친구, 아내, 동지, 민족, 국가, 파월장병, 인민), 반란, 간첩조작, 사법 살인, 재산 강탈, 상습 강간 등 엽기적 패륜 행위로 인륜을 파괴한 자


6) <대한민국 對 박정희>, 슬픈 주권전쟁

(1) 이 주권전쟁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오늘날의 한국을 절대로 이해할 수 없다.
(2) '일본의 개', 대한민국 파괴 주범이 대한민국 건설자, 영웅으로 둔갑 : 국립묘지
(3) 박정희의 완전한 청산 없이는 대한민국=인민주권국가는 환상일 뿐

7) 남북의 차이(민주화 성공, 수령체제)를 만들어낸 결정적 인물은?


2. 박정희 정체 엿보기

1) 새끼 천황

(1) 3~6학년 급장(12살~15살)

돌이켜보면 박정희는 귀엽고 예쁘게 생긴 친구였지요. 그런데도 학교 다닐 때는 그런 생각을 못 했습니다. 성품이 몹시 독한 데가 있었기 때문이지요. 별명이 '악바리' '대추방망이'였지만 함부로 그렇게 부르지도 못했어요. 공부도 잘했고 해서 아이들이 그를 두려워했던 겁니다. 일본인 교사들도 그를 귀여워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박정희가 급장을 지냈던 3학년 때부터 6학년 때까지 급우들 가운데 그로부터 맞아보지 않은 아이들이 드물 정도였습니다. 동급생들보다 키가 작았던 박정희는 겁도 없이 말 안 듣는 아이들이 있으면 체구나 나이가 위인데도 뺨을 후려갈겼어요. 반에서 가장 키가 컸던 권해도(권해도)는 박정희 보다 한 뼘 이상 키 차이가 났고 장가까지 들었는데 교실에서 뺨을 맞아야 했습니다. 고개를 쳐들고 하늘을 보듯이 권군의 뺨을 때리던 박정희의 모습을 생각하니 지금은 웃음이 나와요. 늘 냉엄한 표정인 정희에 대해 아이들은 가까이하기를 어려워했어요.(조갑제,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1*, 353~354쪽)

(2) 해석

((1)) 천재성 : '급장=새끼 천황' 꿰뚫어 본다
((2)) 새끼 천황(절대자) : 12~15세에 절대권력의 맛
((3)) 가둬놓고 조지기 : 꼼짝 마, 인격 모독, 절대권력자의 폭력(뺨)
((4)) 친구관계(수평/상호)->조폭체제(두목-부하,상명하복)
((5)) 뒤집기 성공 : 자궁 폭력->가둬놓고 조지
((6)) 4년 절대자->천황주의자

(3) 특징 : 약육강식의 체질화, 내면화

((1)) 무조건 폭력, 강자, 권력 추종->편입
((2)) 일생을 통해 단 한 번도 약자의 편에 서지 않음 : 약자는 먹이

2) 비로봉 사건(1934년 5월, 대구사범 3학년)

(1) 대구사범

((1)) 천황 숭배로 시작해서 천황 신격화로 끝나는 교육(졸업생)
((2)) 상호 존중 문화 : 요즘 일류대학보다 나음(조폭문화, 파시즘 일상화)

(2) 대구사범 시절(1932.4~1937.3)

((1)) 고독한 늑대 : 독서회 등 일체의 사회적 모임 외면(현준혁, 사회사상연구회 사건)
((2)) 성적 바닥 : 입학 100-51, 3학년 74-67, 4학년 73-73, 5학년 70-69
((3)) 일본어, 교련(아리카와 有川, 소대장)에는 발군의 실력

(3) 이 시기 박정희의 행동 해석

((1)) 수재 학교, 평등/존중 문화 부적응
((2)) 새끼 천황(절대권력)의 지위를 잃어버린 아이->우울한 늑대(권투, 검도, 서예, 나팔)

(4) 비로봉 사건

금강산 여행당시 일행이 머문 숙소는 일본인재벌이 세운 비로봉 호텔이었다. 당시 일본인 학생과 조선인 학생들은 따로 방을 사용했데, 문제의 발단은 반찬에서 차이가 난 때문이었다. 이에 조선인 학생 반장으로 있던 이정찬을 중심으로 조선인 학생들이 비밀회의를 갖고, "내일 호텔에서 판매하는 도시락을 보이콧하자"고 결의했다. 그 다음날은 비로봉난코스등산이 예정돼 있었다. 사전에 이 같은 '모의'정보를 입수한 인솔교사와 교무주임이 조선인 학생에게 입수한 자제를 요청했지만 학생들은 듣지 않은 채 이튿날 아침 호텔을 나서다가 현관에 도시락을 팽개치고는 그냥 등산에 나섰다. ...그런데 당시 박정희는 도시락을 가지고 산에 오른 데다 일본인 교사와 함께 식사를 해 다른 동기생들로부터 "이상하다" "친일파다" 등의 얘기를 듣기도 했다.(정운현, *실록 군인 박정희*,40쪽)

*이 사건으로 2명 퇴학, 1명 무기정학, 7명 1주일 근신(조갑제, *내 무덤을 침을 뱉어라2* 37쪽)

(5) 해석

((1)) 무조건적인 강자/체제 순응
((2)) 한국인 정체성 거부->일본인 편입---내 얼굴에 침을 뱉어라!
((3)) 배신에 따르는 부끄러움/수치심 상실


3) 전쟁놀이

(1) 사건

  제자 박명래는 가을 운동회 때 박 선생이 지도하여 전쟁놀이를 단체경기를 보여준 것을 기억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목총을 만들게 하여 실을 잡아당기면 화약이 터져서 폭음이 들리도록 했다. 박 선생은 재빠른 아이들은 일본군으로, 동작이 굼뜨는 아이들은 중국군으로 편성하여 고지전을 벌이는 연출을 했다. 물론 중국군이 패퇴하는 것으로 끝났다. ...학예회 때도 박 선생의 학급에서는 <지원병 출정>이란 제목의 연극을 했다. 각본은 박정희가 썼다. 당시 군국주의 분위기에 호응하는 내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조갑제,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2* 87쪽)

(2) 해석 : '일본 편' 행동화

((1)) 일본인/침략자 편
((2)) 조센진/학생 대상화/수단화 : 전쟁놀이 도구

4) 기상나팔과 대장의 꿈

(1) 사건

((1)) 기상나팔 : "이 긴박한 시국에 게으르게 잠이나 자는 것은 용서할 수 없습니다"
((2)) '선생질' 거부 : 문경보통학교에서 3년(1937~1939) 가까이 근무하는 동안, 누님 박재희를 찾아갈 때마다 "죽어도 선생질 더 못해 먹겠다"고 하소연
((3)) 대장의 꿈 : 긴 칼 차고 싶어서

(2) 해석 : 이미 일본인보다 더한 일본제국인으로 변신

((1)) 일본인/지배자를 넘어 일본제국주의자로 변신 완료
((2)) 조센징은 통치, 동원, 규율 대상 : 쫄다구---모태 공격
((3)) 조센징(통치대상)->일제인(지배자)->제국의 대장(최고 폭력 상징)이 꿈

3. 충성혈서 : '일본의 견마(犬馬)' 맹세

1) <일본의 개>가 되겠스무니다.

(1) 충성혈서

대한민국임시정부(1919~1945) 21년(1939) 3월 31일자 *만주일보* 7면에 <혈서(血書) 군관지원-반도의 젊은 훈도(訓導)로 부터->라는 제목의 4단 기사

29일 치안부(治安部) 군정사(軍政司) 징모과(徵募課)로 조선 경상북도 문경 서부 공립소학교 훈도(훈도) 박정희군(23)의 열렬한 군관지원 편지가 호적등본, 이력서, 교련검정합격 증명서와 함께 '한 번 죽음으로써 충성함 박정희(一死以テ御奉公 朴正熙)'라는 혈서를 넣은 서류로 송부되어 계원(係員)을 감격시켰다. 동봉된 편지에는


(전략) 일계(일계) 군관모집요강을 받들어 읽은 소생은 일반적인 조건에 부적합한 것 같습니다. 심히 분수에 넘치고 두렵지만 무리가 있더라도 반드시 국군에 채용시켜 주실 수 없겠습니까. (중략) 일본인으로서 수치서럽지 않을 만큼의 정신과 기백으로써 일사봉공(일사봉공)의 굳건한 결심입니다.
확실히 하겠습니다. 목숨을 다해 충성을 다할 각오입니다. (중략) 한 명의 만주국군으로서 만주국을 위해, 나아가 조국을 위해 어떠한 일신의 영달을 바라지 않겠습니다. 멸사봉공(滅私奉公), 견마(犬馬)의 충성을 다할 결심입니다.(후략)

라고 펜으로 쓴 달필로 보이는 동군(동군)의 군관지원 편지는 이것으로 두 번째이지만 군관이 되기에는 군적에는 있는 자로 한정되어 있고 군관학교에 들어가기에는 자격 연령 16세 이상 19세이기 때문에는 23세로는 나이가 너무 많아 동군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정중히 사절하게 되었다.

(2) 아리카와 대좌의 추천서
(3) 간도특설대 강재호의 인도로 국민복을 입고 입학시험 응시

간도특설대(간도특설대 1938~1945) 일본제국의 괴록국인 만주국이 동북항일연군+팔로군 등 항일 조직을 공격하기 위해 대부분 조선인으로 조직한 800~900여명 규모의 대대급 특수부대. 가장 잔인하고 악랄한 독립군 토벌부대---강재호, 김찬규(김백일), 송석하, 신현준, 박창암, 백선엽, 최남근


<부대가>

시대의 자랑, 만주의 번영을 위한
징병제의 선구자, 조선의 건아들아!
선구자의 사명을 안고
우리는 나섰다. 나도 나섰다.
건군은 짧아도
전투에서 용맹을 떨쳐
대화혼(大和魂)은 우리를 고무한다.
천황의 뜻을 받든 특설부대
천황은 특설부대를 사랑한다.


2) 해석

(1)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폭력그룹/지배그룹 쑤시고 들어감 : 나이 사바사바, 아리카와 간도특설대 이용, 충성혈서-'일본의 개'자임
(2) 엄청난 열정과 노력으로 황군 장교(1944.7.1) : 만주 군관학교 수석 졸업(황제상), 일본육사 3등 졸업, 일본인보다 더 일본인다운 일본제국 군인

3) 충성혈서, 박정희의 정체

(1) 충성혈서가 진실이라면

((1)) 진짜 일본제국인

((2)) 패전->'천황폐하 만세!'를 부르짖으며 할복자살, 옥쇄(玉碎)해야 마땅
*타라와 옥쇄(1943.11.23.) : 수비대 5천 5백여 명 중에 포로는 146명(조선인 129명, 일본인 17명) 외에는 자살적 공격(가미가제) 또는 집단자살(玉碎)

((3)) '천황'이 항복도 하기 전에 재빠르게 부대 끌고 투항

(2) 충성혈서가 사기라면

((1)) 천재 사기꾼 : 충성혈서(일본의 개)->혁명공약(반공국시)->7+4 공동성명(민족통일)

((2)) 귀신도 속이는 사기 행각 : 일본인보다 더 일본인다운 군국주의자 행세

(3) 박정희의 진짜 정체는?

4. 오카모토의 비밀

1) 민족 세탁 :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오카모토 미노루(岡本 實)

  지난 72년 나는 도쿄에서 박정희의 만주 신경군관학교 동창생 두 명이 도쿄에 살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수소문 끝에 그들을 만난 일이 있다. 만주군관학교 시절 박정희의 창씨명은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 그곳을 졸업하고 일본 육군사관학교에 편입했을 때 박정희는 창씨명을 완전히 일본사람 이름같이 보이는 '오카모토 미노루(岡本 實)로 바꾼다. 어렵사리 만난 박정희의 두 동창생은 만군시절의 박정희를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박정희는 하루 종일 같이 있어도 말 한마디 없는 음침한 성격이었다. 그런데, '내일 조센징 토벌 나간다' 하는 명령만 떨어지면 그렇게 말이 없던 자가 갑자기 '요오시(좋다)! 토벌이다!'하고 벽력같이 고함을 치곤 했다.

  그래서 우리 일본 생도들은 '저거 좀 돈 놈 아닌가'하고 쑥덕거렸던 기억이 난다."(문명자, *내가 본 박정희와 김대중* 66~77쪽)

2) 왜 명성황후 시해 주범 오카모토 류스노케(岡本柳之助)와 같은 성을 택했을까?

3) 개명 논란

(1) 조선(북한) 날조론


((1)) 1973년 *로동신문*에서 '오까모도' 처음 사용 : 날조
((2)) 이후 날조된 이름 '따라서' 사용 : 날조 증거는? 따라서 사용했다는 증거는?
((3)) '오까모도'는 조선(북한)의 날조? : 그럼 '미노루'는 누가 날조했을까?
((4)) <조선(북한)=날조> 주장이야 말로 황당한 반공공식

*남북 중 누가 더 많이 '날조'했는지는 조사해봐야. 남이 북 압도!
*남은 <'뻥' 나라> : 간첩 날조, 관제 빨갱이, 천안함, 무인기, 사기 천국
*북은 <'뻥튀기' 나라> : 혁명가문, 백두혈통

(2) 오카모토 관련 : 이렇게 많은 자료가 '오카모토 미노루'를 확인해 준다.

((1)) 조선(북한) *로동신문*(1973.8.11.) : '오까모토' 중위
((2)) *김형욱 회고록*(19079), 2권 34쪽 : '다카키 마사오'와 '오카모토 미노루(岡本 實))'
((3)) 문명자, *내가 본 박정희와 김대중*, 66쪽 : 일본육사 시절 '오카모토 미노루(岡本 實)'로 개명
((4)) *일본육해군총합사전 제2판*(2005, 도쿄대학 출판부), <박 정희> 항목 : <일본명 岡本實> ---도쿄대학 간행물에서 아무 근거도 없이 이름 날조?---결정적 자료
((5)) *세계일보* 2006년 8월 9일자 '박정희의 일본식 이름은 왜 두 개였나' : '다카키 마사오'와 오카모토 미노루(岡本 實)' 둘다 박정희의 일본식 이름. "몇몇 재중동포들이 기억하는 '마쯔모도'도 있지만 이는 사실로 확인되지 않고 있다"

5. <광복의 꿈 VS 일본의 개>

1) 극과 극의 혈서 : <조선독립만세 VS 죽음으로 일본제국에 충성>

(1) 조선독립만세

조선국민회 사건 : (중략) 1917년 장일환과 두 명의 조선국민회 핵심멤버인 배민수(숭실중학교 학생, 충북청주 출생)와 김형직(평남 강동군 정읍면에 있는 서당의 훈장)은 한국의 젊은 기독교인들이 전국적으로 모이는 평안장로신학교 개교일을 전후하여 보다 많은 조직원을 확보하였다. 배민수, 김형직, 그리고 노덕순은 그들의 손가락을 잘라 일본제국주의 피로써 반대하기 위하여 "조선독립만세"라는 혈서를 썼다.(양성철, *박정희와 김일성*, 17~18쪽)

((1)) 이 사건으로 김형직(1894~1926)은 9개월 옥살이
((2)) 출옥 후 광제한의원 운영, 일설에 의하면 4년제 백산학교도 운영
((3)) 1924년 늦은 가을 일경에 다시 체포, 탈출
((4)) 1926년 6월 지병으로 사망(33세, 김일성 15세)

(2) 극과 극의 두 혈서 : <조선독립만세 VS 대일본제국만세>

김형직(24세) "조선독립만세 : 9개월 감옥살이-죽음
박정희(23세) "한 번 죽음으로 (일본제국에) 충성" : 만주군관학교 특별입학의 영광!!!->일본육사->황군 장교->소원성취

2) 광복군(1940.9.17) VS 만주군관학교(1940.4)

3) 건국동맹(1944.8.10.) VS 황군 장교(1944.7.1)


6. 순간 변신 : '일본의 개'에서 광복군 장교로

1) 황군 장교 1년 1개월

2) 위험한 순간 변신 : 대일본제국만세!->광복군 화이팅!!!

(1) 항복과 광복군 변신 : 충성혈서, '일본의 개' 맹세는?
(2) 민족/신분 逆 세탁 : 황군->광복군, 오카모토 미노루->박정희

데데쿠루 데카와 미나미나 고로세!(튀어나오는 적들은 모두모두 죽여라!)


(3) 대장의 꿈->천황의 꿈->박정희의 난(5.16)

출처 : 최상천의 사람나라 BAND

3차대전으로 갈게 뻔한 두만강 프로젝트 단호히 반대한다!

 안녕하세요! '진실의 길'입니다. 지난번 영상을 올리고서도 그래도 한반도가 전쟁터로 변화하는 일은 없기를 기대했었는데 이재명 정권이 들어선지 1년 정도가 지나자 제가 예상했던 대로 미국, 일본, 이스라엘과는 멀어지고 중국, 러시아, 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