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14일 일요일

최상천의 사람나라 시즌1 44강 주권전쟁 8년② : 미국의 덫, 하나회 대 빛고을

최상천의 사람나라 44강 주권전쟁 8년② : 미국의 덫, 하나회 대 빛고을



최상천의 사람나라 44강

주권전쟁 8년② : 미국의 덫, <하나회 대 빛고을>

1. 나라 싸움 : <반공조폭 vs 대한민국>

1) 김재규 탕탕혁명, 한국은 어디로?

(1) 탕탕혁명 : 반공조폭의 두목-핵 박정희 사살
*탕탕혁명, 10.26 탕탕절에 대해서는 9월에 다시

① 대한민국의 반국가 수괴 박정희 사살
② 유신체제-반공독재-분단조폭체제 붕괴 위기

(2) 30년 반공조폭시대를 끝낼 수 있을까?

① 대부분 순조로운 민주화 기대, 예상
② 그러나 결과는 광주학살→학살정권으로 귀결

2) <부마항쟁→탕탕혁명→민주화→대한민국>의 길을 누가 왜 막았을까?

(1) 하나회의 ‘정권 탈취 작전’을 막을 수 없었을까?

(2) 광주학살은 막을 수 없었을까?

(3) 공명선거로 민주정부를 수립할 수 있는 길은 없었나?

3) 또 하나의 전쟁 : <반공조폭 vs 민주화세력>

(1) 반공조폭 vs 민주화세력

① 반공독재파 : 민주화세력 제압→반공독재체제 유지
② 민주파-대한민국파 : 민주화→자유민주주의국가→대한민국
③ 결전 : <반공독재 유지 vs 민주화-대한민국 건설>

(2) 반공조폭의 재편

① 12.12 반란 : 하나회-전두환의 군대 장악
*두목 교체 : 박정희→전두환

② 충정훈련(80.2.18 결정) : 시위 폭력진압 훈련

③ K-공작계획(80년 3월 작성) : 조선일보 등 언론의 조직적 참여

④ 전두환의 국가권력 장악 : 중앙정보부장 겸직(80.4.14)

(3) 민주화운동

① 노동운동 : 사북, 청계노조
② 자유언론실천운동
③ 대학생의 민주화운동 : 5.15일 서울역 회군으로 상황 끝
④ 김대중, 김영삼
*김영삼 : 장밋빛 환상
*김대중 : 늦은 복권(80.2.28), 리더십 발휘가 어려운 형편
⑤ 5월 15일 사실상 상황 끝

2. 결전 1980, <하나회 대 빛고을>

1) 하나회 : 호박(護朴) ‘반공’ 조폭

(1) 박정희 군대 내 친위조직 : 전두환-하나회

① 대위 전두환-육사생도, 5.16반란 지지 시위(61.5.18)
② 결성 계기 : 1963년 2월 18일 박정희가 대통령 출마 포기를 선언→전두환, 노태우 등의 육사 11기들에게 자신을 도와달라고 하며 군대내 사조직 결성을 요구
③ 육사 8기(반란주체) 제거 쿠데타 기도-실패(61.7.6) : 박정희 옹호
④ <군대 사유화→반공독재체제→영구집권>를 위한 장기 포석 : 하나회=반공조폭조직

(2) 결성, 구성

① 63년 전두환이 중앙정보부 인사과장(61.5.)이 되면서 본격 조직화된 것으로 추정
② 전두환 중심, 육사 11기 주도로 결성
③ 경상도 독점 : 120명 중 경상도 출신이 70% 정도, 서울 충청은 각 10명 안팎, 호남

3(박종남, 고명승, 장세동), 강원 1, 이북 1

(3) 조직 목적

① 1차 목적 : 박정희의 국군 사유화

② 2차 목적 : 하나회 요직 독점-대물림

약속한 시간에 11기 선배의 어느 집에 가면 11기 전체 회원이 마루나 다다미방 같은 곳에서 일렬로 앉아 있습니다. 그 한가운데에는 회장(전두환)이 앉아 있지요. 반드시 혼자 가서 무릎을 꿇고는 ‘국가와 조직에 충성한다’는 내용의 선서를 합니다. 선서가 끝나면 11기 중의 한 명이 붉은 포도주를 한 잔 따라 줍니다. 두 손으로 그 잔을 받아 마시면 그걸로 하나회 회원이 되는 겁니다.

③ 하나회=해바라기 : 정권, 인사, 정보∙수사, 청와대 경비 : 대통령 경호실, 육군본부, 중앙정보부, 보안사령관, 수도경비사령부(청와대 경비, 30대대)

(4) 성격

① ‘반국가 수괴’ 박정희 호위 ‘반공’ 조폭
***‘반공’ 조폭 : 대한민국=민주공화국을 추구하는 민주화세력/인사→관제 ‘빨갱이’ 제조/처벌이 주목적인 범죄집단

② 하나회=반국가단체, 수괴 전두환

③ 누가 사형수 ‘반국가 수괴 전두환’을 풀어주었나?

2) 빛고을 : 대한민국의 마지막 보루

(1) 차별

① 경제 차별(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한국민주주의연구소 엮음, 한국민주화운동사 3, 79쪽) *내부 식민지 : 경인-영남 공업지대, 호남 농업지대, 저곡가-저임금
*공업 격차 : 1981년 500명 이상 고용 공장 영남 159, 호남 36(영남의 22%)
*소득 격차 : 1978년 광주시민 1인당 연간소득 전국평균의 74.5%
*임금 격차 : 1978년 광주 평균임금 35,073원, 전국 평균(74,121원)의 47.3%
*피라미드-빨대 경제 <농민→노동자→중소기업→재벌→정권>의 최하층
*서울, 영남 공업지대로 이주, 인구 감소

② 인사 차별78~79

대구를 포함한 경상북도 출신의 장성 수는 호남출신 장성 인원 전체의 열 배를 넘었다. 그리고 ...육군참모총장의 경우 박정희정권 이래 20명 중 경상도 출신이 아닌 사람은 두 세명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 중에서도 전라도 출신은 한 명도 없었다.

 (중 략)

 정치 및 행정 엘리트 관료(장관∙차관, 처장, 청장)들도 총 432명 중 전라도 출신은 13.2%(57명)로 경상도 출신 30.1%(130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5공화국 때는 더욱 심해 총 156명의 고위관료 중 영남 출신 42.9%(67명), 호남출신 9.6%(15명)로 무려 4대1의 격차를 보였다.(한국민주화운동사 3, 78쪽) *육군참모총장 : 김대중 정권 김동신(33대), 노무현 정권 김장수(37대) *중앙정보부장(장세동), 검찰총장, 세무서장 등 권부 배제

(2) 인구변화

① 1955→1980→2010

*수도권 : 394만→1,330만(338%)→2,117만(537%) *충청 : 341만→438 (128%)→504(148%)

*영남 : 715만→1,144만(160%)→1,162만(163%)

*호남 : 525만→607만(116%)→499만(95%)

② 호남의 인구 비중

*26.4%(1925)→24.4%(1955)→16.2%(1980)→10.3%(2010)

(3) 김대중=유일한 희망---국민 왕따-빨갱이-사형

① 67년 7대 국회의원 목포선거 : <박정희 vs 김대중>---김대중 승리→호남의 희망
② 71년 대선 : 혁명적 공약, 이긴 선거
③ 이후, 납치 살해기도, 감금, 연금, 구속(5월 17일)

(4) 호남의 정치적 각성→민주화 선봉

① <공명선거-민주정부 수립>만이 호남 살길 : 차별, 왕따를 벗어나는 유일한 길
② 공감과 이심전심 : 주권자의식 고양→호남 단결→전략적 선택
③ 지역/계급을 넘어서서 민주정권 선택(김대중, 노무현)
④ 36년 민주화 메카 : 반 매국독재, 반 새누리당
*20대 총선에서는 호남 50대 이상이 종편, 안철수, 호남 궁물파의 ‘노무현 호남홀대론’, ‘친노 패권주의’ 선동에 속아서 ‘안철수=새정치’로 착각

3) 광주지역 민주화운동의 특징 : 시민민주화운동
*타 지역 : 학생 시위-시민 냉랭, 5월 15일 서울역 회군→시위 중단

(1) 군부독재 최대 피해지역, 반 군부독재에 대한 시민적 공감대

(2) 학생민주화운동→시민민주화운동(5월 15일)

① 전남대 선도 : 5월 6일~14일을 ‘민족민주화성회’ 선포, 시위
② 광주 5월 14~16일 학생연합 시위
③ 15일부터 시민 적극 참여→범시민 시위

*광주지역 전 대학 참여한 대학생연합시위

*전남대 교수 50여 명 참여

*시민 참여 : 도청 앞 3만 시위

다음날인 15일, (중략) 전남대생들을 비롯하여 조선대∙광주교대, 그리고 시내 모든 전문대학 학생들은 도청 광장을 향해 일제히 자기학교를 출발했다. 특히 전남대생들은 50여명의 교수들에게 “민주화 운동 동참”이라는 리본을 달아주었다. 4월혁명 이후 처음으로 학생과 교수가 동참하는 시위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오후 두시 삼십분 1만 5천여 명으로 늘어난 각 대학 학생들은 도청광장의 분수대를 중심으로 둘러앉아 민주성회를 진행했다.(한국민주화운동사 3, 87쪽)

16일 오후 4시가 되자 시내 각 대학학생들은 예정대로 도청광장으로 모여들었다. (중략)시내 9개 대학의 학생들과, 전남대 50여명을 비롯한 각 대학의 교수들이 참여해 학생들의 시위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시민들까지 3만여 명이 참여해 도청을 꽉 메운 가운데 시국성토대회가 시작되었다.

 (중 략)

 학생들은 어둠이 깔린 오후 8시가 되자 400여개의 횃불과 피켓 플래카드를 들고 가두시위에 들어갔다.(한국민주화운동사 3, 88~89쪽)

4) 나라의 운명이 걸린 싸움

(1) 하나회 : 광주를 제압해야 반란→정권탈취 성공

(2) 빛고을 : 하나회-전두환-반공조폭 물리쳐야 <차별-왕따 탈출→민주화 주역>

(3) 광주학살 vs 광주항쟁

(4) 광주시민 : 전두환 정권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피플파워, 2% 대한국인(1980년 전국인구 약 3744만, 광주 약 73만)

3. 경이(驚異)의 열흘, 혁명적 민주공동체

1) 혁명적 민주주의와 앞장 리더십

(1) 상하존비 구분 없이 모두 동등한 개인으로 참여

① 신부, 교수 등 권위주의 집단은 대부분 이탈
② ‘지도부’ 행세 하다가 축출

(2) 혁명적 민주주의 : 사건→이심전심-공감→즉석 토론 의사결정

(3) 앞장 리더 : 자신 있는 사람, 희생 각오 ; 빠른 판단력과 능력자

2) 세 가지 사례

(1) 사례 1 : 가두방송(차명숙 경험담)

① 19일 아침, ‘광주 고립’과 위기 상황을 알리기 위해 방송 필요성 설왕설래
② 참여 50여 명 공감→즉석 토론→확성기 구해서 방송하기로 결정→즉석 모금
③ 가까운 계림전파사에서 모금 돈 한 주고 가두방송 설비 빌림
④ 전옥주(전춘심), 차명숙(19)이 방송, 50여 명은 스피커-줄 잡고 이동, 학동 방면으로
⑤ 처음에는 계엄군도 수수방관
⑥ 자동차 이용 : 아시아 자동차, 버스, 택시 이용
⑦ 전옥주, 차명숙 방송, 저격 피하기 위해 남자들 동승 호위
⑧ 5월 19일~21일 계속 방송

(2) 사례 2 : 택시시위

① 19일 계엄군, 부상병 나르는 택시기사 여럿 무차별 구타
② 20일 아침 신안동 어느 해장국집 : 기사 5~6명 모여 오후 2시 봉기 결정
③ 비상연락
④ 오후 4시 택시, 버스, 트럭 200여 대 무등경기장 집결
⑤ 오후 5시 30분, 일제히 헤드라이트 켜고 도청광장으로 행진
⑥ 가두방송(전옥주, 차명숙) 맹활약 : 시민을 모우고 경찰에 역 선무방송 전옥주는 마이크를 통해 “도와 주세요. 경찰관 아저씨, 아저씨들은 우리 편입니다.”라며 울부짖었다. 전옥주는 시위대열을 광주세무서 앞으로 이끌면서 “세무서를 불질러 버리자 세금 걷어 국민 잡는 공수부대를 키웠으니 세무서도 나쁜 놈들이다.”라고 외쳤다. 시민들은 웅성거리며 몰려가 먼저 광주세무서 별관인 단층목조건물에 화염병을 던졌다. 본관은 다음날 낮에 불타게 된다.(한국민주화운동사 3, 105쪽)

⑦ 시민 적극 호응 참여
⑧ 계엄군 언론 광주MBC, 광주KBS, 세무서 방화

(3) 사례 3 : 시민군 결성

① 계엄군 무차별 발포 : 21일 오후 1시
② 청년 삼삼오오 무기, 다이너마이트 탈취 : 화순, 나주, 장성, 영광, 담양, 보성, 무안, 영암,함평, 강진, 해남, 완도, 곡성, 구례 등 전남 지역 무기고, 파출소에서 무기 탈취
③ 광주항쟁 전남 전역 전파 : 목포, 무안, 함평, 나주, 영암 등에서도 시위
④ 예비군, 청년, 고등학생 등 시민군 가담, 도청 진입
⑤ 지휘부 없는 동학농민혁명

3) 경이의 열흘 : 혁명적 민주공동체의 체험

(1) 공감 : 호남의 아픔(차별과 왕따), 반 군부, 민주화에 깊이 공감

(2) 참여 : 남녀노소 시민 집회 참여, 시위 참여

(3) 나눔 : 집 개방, 음식, 각종 물품, 헌혈 ; 광주가 한가족

(4) 협동 : 자연적 분업과 협동 ; 시민군, 시민언론, 시위대, 음식, 치료

(5) 자치 : 혁명적 민주주의→앞장 리더십

4. 빛고을, 미국의 민낯을 보여주다!

1) 윤상원, 미국의 가면을 벗기다

(1) 5월 26일 오후 5시 윤상원 외신기자 회견
(2) 글라이스틴 주한미국대사에게 계엄군과 시민군 중재 요청
(3) 글라이스틴 묵살 : 진압-살인 묵인
(4) 이 장면에서 한국군과 미국의 민낯이 드러난다. (5) 이 나라는 대한민국이 아니라 미국이 조종하는 코메리카

2) 한국은 코메리카 : 미국 반공전선/반공기지, 속국

<사람나라 8강, 미국 덫에 걸린 코리아> 참조

(1) 미국의 한반도 분할점령 목적

① 일본 방파제 구축 : 일본은 미국의 동아시아 파트너(미일동맹)
② 한국은 미국의 반공최전선-일본 방파제 : 한국은 미국의 속국-반공기지

(2) 반공전선 유지의 필수조건→반공군대, 반공국가

① 친미 반공군대가 필수조건
② 친미 반공 군대를 휘하에 두기 위해 작전통제권 필요
③ <미국→군사정권 +반공군대>가 최고
④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의 공통점 : 반공독재정권

(3) 미국과 자유민주주의
① 4월혁명 이후 2공화국-자유민주주의 정권
② 민족주의 + 민주주의→민중적 통일운동
③ 미국 5.16 반란 용인

(4) 코메리카
① 한국은 형식적 주권국가, 미국 속국
② 미국=종주국 : 군사주권→반공군대 통제→반공독재국가 유지
③ 매독이 전시 작전통제권 회수를 한사코 거부하는 이유 : 미국 힘으로 반공전선-반공체제 유지→반공독재체제 회귀 욕망 때문

3) 탕탕혁명 후 미국의 선택

(1) 미국의 가능한 역할

① 작전통제권을 통해 신군부의 ‘정권탈취작전’ 통제 가능 : 부대 이동 불가
② 그랬다면 순조롭게 민주화, 최소한 자유민주주의 정착
③ 미국은 12.12 반란, 광주학살에 필요한 ‘작전들’을 전부 승인하였다.
④ 신군부의 정권탈취는 미국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2) 12.12 반란 지원

12.12쿠데타가 발생했을 때에도 한국군의 작전권을 가지고 있었던 주한미군사령관 존 위컴(John A. Wickham)은 노태우가 전방을 지키는 9사단 병력을 이끌고 서울에 들어오는 것을 제지하지 않았으며, 전두환 대 정승화의 군부 내 갈등에 대해 자제를 요청하면서 ‘중립’을 지켰다.(서중석, 한국현대사 60년, 161쪽)

(3) ‘광주 작전’=‘화려한 휴가’ 승인, 학살 동조

1980년 5월 9일 미 국무부와 국방정보국의 전문 : 미국은 전두환에게 군대를 학생시위에 동원할 수 있도록 하는 적절한 승인을 해주었음을 명시함. 1980년 5월 16일 미국은 제 20사단을 그들의 작전통제권에서 방출함. “워싱턴에 있는 그의 상관들과 의논한 후에” 위컴은 제20사단이 광주로 배치될 수 있도록 승인함.

*신군부, 5.17 비상계엄 전국 확대 국무회의 결정 전에 미국에 통보

1980년 5월 21일 글라이스턴이 DC에 보낸 전문 : “광주에서의 대규모 반란은 아직 통제 밖에 있으며 걱정스러운 상황을 야기하고 있다.”, “…대규모의 폭도가 일시적으로 도시를 장악하고 있으며…” 1980년 5월 22일 미 국방부 대변인은 위컴이 “한국 정부로부터 나의 작전 지휘권 아래 있는 특정 한국군을 시위대의 진압작전에 동원할 수 있도록 허가해 달라는 요구를 받고 이를 수락, 동의하였다”고 시인했다. 1980년 5월 23일 워싱턴에서 미 국무부 대변인 호딩 카터(Hodding Carter), 카터 정부는 “남한의 정치 자유화에 대한 압력을 연기하는 한편 안보와 질서의 회복을 지지하기로 결심했다.”고 발표. 1980년 5월 25일 국무장관 무스키의 전문: “광주의 상황은 더욱 심각한 상황으로 바뀌었다고 언급”. 그의 정보통은 “온건파 수습위는 상황에 대한 통제권을 잃었고 과격파가 등장해 세력을 장악했다. 인민재판이 열렸고 약간의 처형이 이뤄졌다. 학생시위대는 혁명정부수립을 주장하는 신원미상의 무장한 과격파들로 대부분 대체되었다”라고 보고했다. 1980년 5월 26일 글라이스틴이 워싱턴에 보낸전문 : “광주의 상황”은 “더욱 나쁜 쪽으로 과격한 전환을 했다. 과격파들로 이뤄진 무장그룹과 심지어 인민재판과 처형에 대한 보고가 있었다.”

1980년 5월 26일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 글라이스틴에게 미국이 평화로운 해결을 중재해줄것을 요청. 글라이스틴은 대답을 거절함. 위컴은 1980년 8월 27일 AP통신과의 회견에서 “10월 사태 이후 미국이 한국 공작에서 가장 성공한 일은 전두환 정권이 수립된 것이다. 우리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으며 우리 보람도 크다.”고 말해 노골적으로 전두환에 대한 호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주한미군사령관 존 위컴은 “한국인은 들쥐와 같은 민족이어서 누가 지도자가 되든 복종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한국의 국민들에게는 적합하지 않다.”고 했다.
(조지 카치아피카스, “광주민중항쟁에 대한 미국의 개입”, 2008-5-29 (강연자료)

‘코메리카 총독’ 인증 샷 : 레이건 취임식 전두환 초청

① 미국이 군사주권-작전통제권을 통해 한국 상황 통제
② 하나회는 미국의 꼬봉 : 승인 하에 움직이고, 중요 결정을 사전 보고한다.
③ 대한민국 대통령(최규하)은 괴뢰 : ‘남조선 괴뢰도당’이라 해도 할 말 없음
④ 광주민주항쟁은 ‘폭도의 난동’으로 왜곡, 부정

4) 매독의 광주항쟁 부정

(1) 광주학살-광주항쟁은 매독/반공독재세력-미국의 쥐약

(2) 5.18 기념식 불참, 임을 위한 행진곡 거부

(3) ‘학살 배후’ 바꿔치기 : 미국→북한

① 서석구, 지만원 등 : 남파 ‘북한군’이 선동한 시민폭동
② 배후 바꿔치기, 누가 왜 그럴까?

5. 빛고을의 꿈

1) 광주에서 빛고을로

(1) 평가 : 한국민주화운동의 금자탑-시민항쟁, 무장항쟁
(2) 역할 : 한국민주화운동의 메카
(3) 계승 과제 : 혁명적 민주공동체, 어떻게 계승할 수 있을까?

2) 두 가지 주권 과제

(1) 군사주권 회복, 코메리카를 타파하라!
(2) 인민주권 실현, 대한민국을 건설하라!
(3) 통합 : 자주적 민주공화국을 건설하라!

3) 누가 코메리카를 <대한민국=자주적 민주공화국>으로 바꿀 수 있을까?

(1) 주권의식을 가진 주권자 모임, 주권자연대
(2) 주권자공동체를 지향하는 진정한 민주정당
(3) 혁명적 리더

출처 : 최상천의 사람나라 B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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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이라는 말은 매국의 역사를 왜곡하는 거짓말입니다

 일제강점이라는 말은 매국의 역사를 왜곡하는 거짓말입니다. 최고의 매국노 '도쿠주노미야 이태왕'을 주축으로한 왕공족들이 어떻게 나라를 팔아먹었는지를 아주 핵심을 집어서 비판한 영상이 있어서 그 영상에 나오는 내용을 아래의 글로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