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3일 토요일

정말 이승만이 장인환과 전명운의 변호를 거부했나?

Youtube Shorts 영상

출처: https://youtube.com/shorts/sSe4sxpyJG4?si=B27j1tyEo5-5b6zg


역사논객 H모모씨와 같은 일부 단체나 사람들이 말하고 있는 스티븐슨 암살사건 관련해서 이승만이 변론을 거부했다는 얘기를 들어 보셨을 겁니다.

그렇지만 아닙니다. 심지어 거액의 돈을 요구했다고 하는데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이승만이 장인환과 전명운의 변호를 거부했다? 아닙니다.

당시 한인들이 부탁한 일은 변호가 아니라 통역입니다. 

따라서, 이승만이 거부한 것 또한 변호가 아니라 통역입니다.

변호와 통역은 전혀 다른 역할이고 이승만은 미국 변호사 자격증 자체가 없는 사람입니다.

또 '이승만이 너무나 큰 돈을 요구했다'는 주장은 거짓말입니다. 이승만과 적대적인 관계였다고 할수있는  김원용씨가 재미한인의 역사를 다룬 '재미한인 50년사'에도 금전 요구나 수수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 얘기입니다.

통역을 거부한 이승만은 1908년 8월 12일 한인 신문 '공립신보'에 글을 기고했습니다.

'그 충애지심이 도리어 한국의 장래에 손해할 염려가 없지 않으리로다.'(1908년 8월 12일 '공립신보')

실력 양성과 외교적인 경로를 통한 독립이라는 전략적인 이유에서 이승만은 통역을 거부한 겁니다.

또 '잔인한 민족, 한국인-스티븐슨씨 암살 사건은 돌출 사건이 아냐(Koreans Bloody Race-Attempted Assassination of Mr.Stevens Not an Isolated Case)라는 기사가가 1908년 3월 26일 '뉴욕타임스'에 실리기도 했습니다.

미국과 일본의 관계가 밀월관계인 상황에서 외교 투쟁을 택한 이승만에게 이 재판 간여는 쉽지 않았습니다.

신흥우, 중앙 YMCA청년회 총무 재직 시절

그리고 대신 통역을 맡았던 유학생 신흥우는 이승만의 옥중 동지입니다. 이승만과 배재학당 동문이고 수감된 감옥에서 옥중 학교를 같이 이끌었던 인물입니다.

손세일의 ' 이승만과 김구'21 (월간조선 2003년 4월호, p565)에 따르면 신뢰하는 동지 신흥우에게 통역을 부탁한 겁니다.

이 사실은 류석춘 전 연세대 이승만연구원장이 발굴한 '송철 회고록'(이상수, Key Ad & printing Co., 1985)에 이승만이 과거 옥중동지였던 신흥우에게 통역을 부탁했다고 나와있습니다.(p224, p225) 

사진 출처: 자유일보
출처: https://cdn.jayupress.com/news/photo/202402/26581_34941_2620.jpg


자유일보에 실린 '송철 회고록'의 일부
출처: https://www.jayu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26581

여기 송철 회고록의 일부를 소개한 내용에서도 분명히 이승만은 장인환 의사의 통역으로 열변을 하였으며 나중에 하버드 대학으로 공부를 위해 떠나야 하는 상황에서 자기와 옥중동지였던 신흥우씨에게 통역을 부탁을 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박종인의 땅의 역사] 176. 이승만이 식민 지배를 찬양한 친일파라고? - 역사 강사 황현필씨 주장 검증1

출처: https://youtu.be/J0-KVcMNlZs?si=G7UCiBhnRYMGWOF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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