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2일 토요일

일제강점이라는 말은 매국의 역사를 왜곡하는 거짓말입니다

 일제강점이라는 말은 매국의 역사를 왜곡하는 거짓말입니다.


최고의 매국노 '도쿠주노미야 이태왕'을 주축으로한 왕공족들이 어떻게 나라를 팔아먹었는지를 아주 핵심을 집어서 비판한 영상이 있어서 그 영상에 나오는 내용을 아래의 글로 옮겼습니다.

조선은 매국노 '도쿠주노미야 이태왕'이 나라를 스스로 일본에 넘긴 것이며 절대 일본이 무력으로 강제점령한 것이 아닙니다.

당시에 안중근이나 이런 사람들도 왕이 나라를 스스로 팔아넘긴 것을 알고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것도 아닙니다. 전혀 모르고서 한 일이지요.


따라서 '일제강점기'라는 말 자체가 거짓말입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일제통치기, 일제의 조선영토 매수시기' 이런 말로 바꿔야 정상적인 겁니다.


'일제강점기'라는 말 자체가 우리 스스로 근현대 매국의 역사를 왜곡해서 후손에게 잘못되게 가르치고 있는 겁니다.


정치적으로는 반일선동으로 '한,미,일' 공사동맹을 추구하는 미국의 전략을 깨고자하는 중국과 일본의 입장에 놀아나는 친중파들이 외세의 앞잡이가 되어 근현대사에서 매국의 역사를 이완용을 비롯한 을사오적으로 국한 시킴으로서 이 나라를 중국과 일본의 의도대로 끌고가기 위해 매국의 역사를 삐뚤어지게 가르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얼마나 잘못되게 역사를 가르치고 있는지 여러분들이 배워온 내용들과 비교해가면서 확인해 보세요.



- 아 래 -




조선은 실제로 1910년 경술국치로 인해 그 간판을 내리게 되었지만 사실상 나라가 망하는 시점은 1905년 을사조약입니다.


을사조약은 대한제국이 국가의 외교권을 빼앗기는 사건으로 외교권이 없은 국가는 이미 정상적인 국가라고 할수없으며 실질적으로 조선은 이때 망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을사오적이라 하여 이들을 가장 큰, 또 대표적인 민족의 반역자로 기록하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다른 친일파들은 잘 몰라도 을사오적의 '이완용'같은 사람은 모르는 사람이 없죠.


그만큼 을사조약은 정말 중요한 사건입니다.


 사실 이전 대한제국이 미묘한 위치에서 그나마 자주 독립국가의 간판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아이러니 하게도 강대국들의 이권 다툼이 어느정도 균형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상 전통적으로 사대를 하던 청나라가 옆에 있고 바로 위에는 러시아 또 옆에 일본이 자리하고 있죠.

대표적 제국주의 국가 영국, 프랑스는 이 사이에서 한반도를 점령할 어떠한 명분이 없고 미국만 해도 사실 어렵죠.

즉 청,러,일은 한반도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던 강국이었는데 1905년 당시에는 이 균형이 와르르 무너져 내립니다.

앞서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했고 이후 러일전쟁에서도 일본이 승리했기 때문이죠.

이로 인해 사실 일본의 기세는 막을 수가 없게 되었고 한반도에 작용하던 강대국의 균형관계는 무너지게 됩니다.

을사조약이 있던 1905년은 벌써 고종이 즉위한지 40년이 넘게 지난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고종과 민씨일족의 막장적 착취와 강대국들의 침탈로 나라는 더더욱 망가져 갔죠.


궁궐공사와 황실행사에는 돈을 물쓰듯 쓰고앞서 임오군란의 원인인 월급이 1년 넘게 밀린 군인들에게 썩은 쌀과 모래를 섞어 준 사건도 있었죠.


그러나 희한하게도 고종은 자신의 자리를 내내 유지했습니다.


임오군란과 동학농민운동 이 두가지 대사건이 일어났을때 고종이 선택한 방법은 무엇인가?


간단하게 말해서 임오군란은 청나라 군대를 불러 때려 잡았고 동학농민운동은 청과 일본, 중에서는 일본군이, 그리고 일본군과 함께 갔으며 안중근이 군관으로 참전한 관군이 때려 잡았습니다.


임오군란때는 아예 자국민 죽이라고 외국군대 들여온 사람이 바로 고종이었죠?


자!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서 1905년 11월 17일 러일전쟁이 끝나고 초고속으로 을사조약이 체결 됩니다.


당시 이 조약을 결사반대한 조병세가 자결하기 전에 남긴 상소문을 볼까요?

"현재 나라가 망하는 것이 당장 눈앞에 임박하였는데도 폐하께서는 단지 4, 5명의 역신들과 문의해서 일을 주선하니 비록 망하지 않으려고 한들 그럴 수 있겠습니까?

신이 죽은 뒤에 진실로 분발하고 결단을 내려 박제순, 이지용, 이근택, 이완용, 권중현 오적을 대역부도의 죄로 논하고

코를 베서 처단함으로서 천지와 신인에게 사례해야 할 것입니다." -고종실록 42년 12월 2일-


어째서 황제는 나서지 않는 것이며 오적의 대신들과 상의하여 이렇게 일을 진행 시킬수가 있느냐 이걸 말하고 있죠?


미국의 부영사 월라드 스트레이트는 을사조약 체결 당일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곳 상황은 참 놀랍다. 왕관을 쓴 자들 가운데 최악으로 비겁하고 최하급인 황제는 궁전 속에 움츠리고 자기가 저지른 잘못으로 타인들을 고통스럽게 만들고있다.

황제는 외부대신에게 조약에 서명하라고 지시하고서는 자기가 지시하지 않았다고 말하라고 또 지시했다. 그래서 외부대신이 모든 책임을 뒤집어썼다."<The Willard Straightt Papers>


여기서 말하는 외부대신이 바로 대표적인 매국노인 을사오적의 박제순입니다.


고종이 을사조약을 반대했을까요?


실제로 을사조약을 체결한 박제순은 이후 국무총리격인 의정대신 서리에 임명되었다가 참정대신이 되었고 후에 헤이그 특사로 가는 이상설은 을사조약 직후에 대놓고 고종을 비판합니다.

"폐하가 무효를 극력 주장하고 준절히 따지고 엄하게 물리쳐야 하는데 역시 주벌을 단행하여 빨리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였다는 말은 들리지 않고 도리어 나라를 팔아먹은 역적 두목을 의정대신의 대리로 임용하여 신으로 하여금 그의 아래 반열에 애써 나가도록 하니, 신은 울분의 피가 가슴에 가득차고 뜨거운 눈물이 눈가에 넘쳐흘러 정말 당장 죽어버려 모든 것을 잊어버렸으면 합니다." -고종실록 1905년 11월 24일-


그 민씨일족의 민영환을 비롯해 수많은 신하들이 을사오적을 처벌하라고 상소를 올렸지만 고종은 오히려 을사조약의 부당함과 역적들을 처벌하라고 한 상소를 올린자들을 잡아 가두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한일협상조약을 맺은 대신들을 처벌하라고 상소한 이들을 잡아들이라 하다.> "누차 타일렀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물러가지 않는데 신하의 분수로 보아 어찌 이런 것이 용납되겠는가? 소두(疏頭) 이하를 모두 법부에서 잡아 징계처분하게하라 하였다" -고종실록 1905년 11월 28일-


을사조약을 쉬쉬하는 고종에 대한 내부주사 노봉수의 상소는 애절합니다. "삼가 폐하의 마음이 어떠한지는 모르겠지만 혹시 선왕의 판도(版圖)를 일본의 영역으로 넘겨주고 조종(祖宗)이 남겨주신 백성들을 일본인의 포로로 모두 넘기려고 그러시는 것입니까? 이 판도와 백성으로 말하면 태조고황제(太祖高皇帝)가 비바람을 맞으며 힘들게 마련한 것이지 폐하의 개인 소유가 아니니, 어찌 티끌 하나인들 헛되이 던져버릴 수 있겠습니까?" -고종실록 1905년 11월 28일-


왜 백성들을 일본에게 팔아넘기는 것인가? 정확하게 말하고 있죠?


을사오적은 나라를 팔아먹은 과정에서 개인의 부와 권력을 챙긴~ 말하자면 양아치들이죠.


그러나 실제로 나라를 팔아먹은게 과연 을사오적을까요?


을사오적이 없다고 일본이 조선을 무슨 먹지 못하게 될까요? 아닙니다.


일본은 무슨 수를 쓰던 조선을 먹었을 겁니다. 100% 그렇죠


을사조약이 체결되고 얼마 후 1905년 11월 22일 훗날 헤이그특사가 되는 이상설은 분노의 글을 대한매일신보에 날립니다.

"이 조약은 맺어도 망하고 거부해도 망한다. 망하는 것은 똑같은데 어찌 황제는 죽으려 들지 않는가?"


키야~ 이렇게 멋진 문장이 또 있습니까?


이리해도 망하고 저리해도 망하는데 대체 왜 아무것도 하지않는가? 이 뜻이죠!


대한제국은 전제군주국가로 제한국 국제, 즉 대한제국 헌법은 2조에 이런 항목이 있습니다.

"제2조, 대한제국의 정치는 이전부터 오백년간 전래하시고 이후부터는 항만세(恒萬歲)불변하오실 전제 정치이니라."


자! 여러분 대한제국, 조선의 전제정치 군주가 누구고 을사오적이라는 매국노를 처벌하라는 신하들을 물리치고 잡아 가둔게 누구고 나라를 팔아먹는 조약에 사명한 박제순을 의정대신에 바로 임명한 사람이 누구고 왜 나라를 팔아먹느냐는 상소에 부끄러운줄 모르는 자가 누구죠?

 그게 고종아닙니까?


그럼 나라를 팔아먹은게 불변하오실 전제정츼 전제군주 고종이 아니면 대체 누굽니까?


을사오적이 나라를 팔아먹었나요 아니면 고종이 나라를 팔아먹은건가요?


을사조약이 체결되고 이후 1905년 12월 16일 고종실록을 보면 "권중현이 아뢰기를 '신이 외부에서 얻어 본 일본황제의 친서 부본에는 우리 황실의 안녕과 존엄에 조금도 손상을 주지 말라는 말이 있었는데 이번 약관은 나라의 체통에 크게 관련되지만 일찍이 여기에 대해서는 한 마디의 언급도 없습니다 신의 생각에는 부득이해서 첨삭하거나 고치게 된다면 이것도 응당 따로 한 조목을 만들어야 하리라고 봅니다 하니, 폐하께서 하교하시기를 '그건 과연 옳다' 농상공부 대신의 말이 참으로 좋다' 하셨습니다."


을사오적의 권중현이 대한제국 황실의 안녕과 존엄을 보장한다는 내용을 조항으로 만들어야한다 하니 고종이 '그게 좋겠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게 뻥일까요? 이게 뻥인데 그 많은 신하들이 을사오적을 처벌해야한다는 상소를 올리고 그걸 고종이 내치고 민영환이나 한규설, 이상설이 대체 황제는 뭐하는거냐는 상소와 글을 올릴까요?


을사조약을 반대하는 인간이 황실의 안녕과 존엄을 보장하는 항목이 있어야 한다는 말에 과연 그렇다고 할까요?


나라는 외교권을 잃고 간판뿐인 국가가 되는데도 황실은 보장되어야한다. 이거죠.


고종은 을사조약이 체결되고 11월 27일 을사조약의 부당함과 오적에 대한 처벌을 말하며 농성시위를 하는 원로대신조병세를 몰아냈고 28일에는 민영환이 버티면서 을사조약을 반대하자 이들을 체포하라 했고 민영환은 자결했습니다. 또한 조병세 역시 그를 뒤따라 자결했죠.


군주의 존재이유는 국가의 부국강병에 있습니다.


을사조약은 나라의 외교권을 팔아먹는 조약으로 사실상 대한제국은 이 조약으로 끝난것입니다.


그러나 고종은 이 조약에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정확히는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자신과 황실의 안녕을 꾀했죠.


 여러분 북한의 김씨왕조는 북한이라는 체제만 유지하면 평생 인민들을 착취하며 잘먹고 잘살수 있습니다.


대한제국도 이것과 같습니다.


 고종은 황제라는 간판만 유지하면 조선반도의 백성들을 착취하며 군림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을사조약은 대한제국이라는 간판이 내려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고종은 이에 소극적으로 나서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수의 신하들은 이미 알고있죠 이것이 500년을 이어온 조선의 끝이라는 것을요!


고종은 자신의 왕권을 위협했던 갑신정변의 주역 김옥균이나 박영효를 죽이기위해 자객을 보내기도 했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나라를 팔아먹은 오적들은 비호하고 벼슬을 높이고 그들을 처벌하라는 상소를 올리는 자들은 잡아가두고 내쫓으니 이게 과연 정상적인 국가의 군주입니까?


아직도 나라를 팔아먹은게 을사오적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해도 망하고 거부해도 망하는 조약에 찬동한 자는 누굽니까?


당시 고종은 '어쩔 수 없었다'라고 말하는 자들은 대체 무엇을 근거로 이후의 친일파들을 비난하고자 합니까?


국가의 헌법으로 불변의 권력과 권리를 가진 군주도 나라를 팔아먹는 판에 대체 이것을 비난하지 않으면서 그의 백성들이 일본에 빌붙는것을 무엇으로 비난할 수 있단 말입니까?


여러분 고종은 아무것도 안하고 오히려 을사오적을 비호하다가 1907년 그 유명한 헤이그밀사를 보내죠?


을사조약의 부둥함과 일본의 탐욕을 국제사회에 고발하게 위해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파견합니다.


이건 고종이 일본에 저항했다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고 실제로 고종은 이 사건으로 사실상 강제퇴위를 당하죠



*헤이그 특사의 진실*


밀사단의 대표는 을사조약을 강력하게 반대했던 이상설입니다.

앞에서 어차피 망하는데 왜 고종보고 안나서냐고 했던 그 사람이죠?

그와 함께 간 사람이 바로 이위종인데 이 사람 역시 전주 이씨 입니다.

밀사들은 일본의 방해로 본회의에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기자단 앞에서 연설문을 발표했는데 이것이 1907년 8월 22일자로 미국<인디페던트>지에 실려 있습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한국을 위한 호소문'입니다.

 내용을 보면 "일본은 '정의롭고 평등한 기회'를 보장한다는 구호와 달리 추하고 불의하며 비인도적이고 이기적이며 야만스러운 행동을 보였고 지금도 그러하다."

"잔인한 지난 정권의 학정과 부패에 질려있던 우리 한국인은 일본인을 희망과 공감으로 맞이했다 우리는 일본이 부패한 관리들에게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 만민에게 정의를 구현하며 정부에 솔직한 충고를 해주리라고 믿었다 우리는 일본이 그 기회를 활용해 한국인에게 필요한 개혁을 하리라고 믿었다."


여러분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거랑 다르죠?


헤이그특사 이위종은 전주이씨 종친인데도 일본의 야욕과 조약의 부당함만을 말하는게 아니라 고종이 어떤 인간인지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전세계의 기자들이 있는 자리에서도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조선군주의 부패와 학정에 백성들이 착취당하며 우리 스스로 일본을 받아들였다고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죠.


역사 강사들은 이걸 일부러 얘길하지 않습니다. 진짜 일부러 얘길하지 않는겁니다.


마치 김원봉이 독립운동가 중 현상금 1위였다는 아무 근거도 없는 도시전설을 분명한 사실이라 가르치는 것처럼 일부러 말을 하지 않는겁니다.


왜냐하면 그 헤이그 특사마저도 고종이 얼마나 막장인지 말하고 있지만 이걸 말하게 되면 그들이 가진 국뽕 역사관이 무너지고 일본을 비난하기 이전에 이위종이 말한 '학정과 부패로 물든 잔인한 지난 정권'인 조선을 공격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고종은 나라가 망해가는 가운데서도 1900년 경복궁, 창덕궁, 선원전 증축 공사를 진행했고 1901년 경운궁과 중화전을 신축했으며 온갖 황실잔치에는 돈을 물쓰듯이 쏟아 부었습니다.


을사조약에 앞서 1904년 일본은 한일의정서를 체결하는데 이것은 사실상 한반도를 일본제국의 군사적 전략기지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본격적 신민화의 전초단계였습니다.


일본이 한반도를 군사부지로 사용할 수 있게되는 협정이었죠


이때 영국 외무성 외교장관 랜스다운의 기록에는"이토 대사는 황제에게 천황의 선물이라며 30만엔을 전달했다. 또한 경부선철도에 고종이 가진 지분을 보장하고 향후 경의선 지분 또한 보장한다고 확약했다."


여러분 이 당시 30만엔은 현존가치로 300억이 넘는 돈입니다.


또한 일본과 철도권에 대한 협상을 하면서 자신의 지분까지 보상받습니다.

그리고 돈까지 일시불로 땡겨 받았죠


이런게 매국노 아닙니까?


이게 1904년 2월이고 3월에 돈받아 먹은게 감사했던지 고종이 직접 일본의 하야시 공사와 일본공사관 인문들에게 훈장을 수여하고 천황의 돈을 가져다준 이토에게는 최고 훈장인 금척대수장을 수여했습니다.

진심으로 여러분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자~ 누가 나라를 팔아먹었죠?


을사오적이요? 경술국적이요?


외교권을 빼앗고 자주국을 보호국으로 만들어버린 일본이 과연 을사조약만으로 만족할까요?


모든 신하들이 을사오적같은 역적들을 처벌하고 황제가 목숨걸고 나서야 한다고 할때는 잠자코 있다가 헤이그 특사를 보낸다는게 애시당초 말이 되나요?

그리고 나라를 빼앗기고 일본이 주는 150만엔을 받고 산다는게 말이되나요?


신하들은 작위를 거절하고 스스로 세상을 떠나는 판인데요!


고종은 나라를 빼앗기고 할 일이 없으니 챙피한 줄을 모르고 궁녀들과 놀아났습니다.


복녕당 양씨, 광화당 이씨, 보현당 정씨 등의 궁녀들이 그 당시 말하는 승은을 입었고 토 나올것 같지만 여러분 그 영화로도 유명한 덕혜옹주가 태어났을때 어머니인 복녕당 앙씨는 31살이었습니다.


고종은 몇살이었을까?


61세로 딱 환갑이었죠 덕혜옹주가 태어난 것은 나라를 팔아넘긴 경술국치 이후 대략 2년 후인 1912년 5월이었습니다.


즉 덕혜옹주와 아버지 고종의 나이차는 60년 차이가 납니다.


나라는 쳐 망하고 자신의 백성들은 2등신민이 되었는데 우리 자상한 아버지 고종은 친족과 이왕가의 종친들 일본 인사들까지 돈덕전에 불러서 늦둥이 딸을 출산한 기념파티를 열었습니다.


아주 그냥 신나겠죠? 나라는 망했어도 어쨌든 딸이 태어났는데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여러분 덕혜옹주 이후로도 고종은 아들을 두명 더 낳습니다.


여러분 이건 여담인데 고종의 또다른 후궁인 삼축당 김씨는 21살때 고종의 승은을 입습니다. 이때 고종의 나이 59세입니다.

그리고 김씨는 나중에 우리 대한민국에서도 고종의 부인이라 하여 국가의 지원금을 받았습니다.


이게 진짜 대한민국에서도 일어났던 일입니다.


군대에서 눈이 멀어도 국가유공자 안만들어 주려고 하는 국가에서 월남참전용사 명예수당 월 만원 주던 나라에서 고종의 첩이라고 매달 돈 챙겨줬다 이겁니다. 

매달 10만환 받았다고 되어있는데 50년대 예술인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번 김용환 화백의 수입이 월 10만환이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1955년에 80kg짜리 쌀 한가마니의 가격이 1만환입니다. 무려 당시 쌀 800kg을 살 수 있는 돈입니다.


그야말로 황제 폐화의 승은이 맞죠?

13세에 궁녀로 들어가 어쩌다가 황제랑 자니까 나라망하고 그 다음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도 노후까지 보장되는 세상에 이런 재태크가 어디 있답니까?


딸보다 더 어린 아내랑 놀면서 이렇게 승은을 주시니 그야말로 고종 폐하 만세입니다.


고종통천융운조극돈륜정성광의명공대덕요준휘우모탕경응명입기지화신열외훈홍업계기선력건행곤영의홍휴수강무장인정효태황제


덕수궁 이태왕


이 한반도의 마지막 바지사장 군주이며 이왕가의 수장 순종의 유언을 볼까요?


"지난날의 병합 이준은 강린(强隣, 일본을 가리킴)이 역신의 무리(이완용 등을 뜻함)와 더불어 제멋대로 해서 제멋대로 선포한 것이요 다 나의 한 바가 아니라

오직 나를 유폐하고 나를 협박하여 나로 하여금 명백히 말을 할 수 없게 한 것으로 내가 한 것이 아니니 고금에 어찌 이런 도리가 있으리요 나, 구차히 살며 죽지 못한 지가 지금에 17년이라종사에 죄인이 되고 2천만 생민(生民)의 죄인이 되었으니 한 목숨이 꺼지지 않는 한 잠시라도 이를 잊을 수 없는지라 여러분들이여 노력하여 광복하라 짐의 혼백이 명명한 가운데 여러분들을 도우리라."


여러분 이게 얼마나 웃긴 코미디이며 제 정신인 인간이 할수있는 말입니까?


순종은 고종보다 더 일본의 꼭두각시로 살면서 당구치고 외제차 타고 커피마시고 딸보다 어린 후궁 두면서 살더니 뭐라구요?


지난날의 굴욕은 역신의 무리들이 한 것이고 자기는 협박당했고 유폐당했고 그래서 뭐 어쩔 수 없었고 난 죄인이라구요?


그리고, 대한민국 근현대사 가장 어처주니 없는 헛소리


'얘들아 노력해서 광복을 해라' 아니 이게 제 정신입니까? 지는 일본이 주는 돈으로 살다가 죽으면서 미안하다 니들이 노력해서 광복을 하라구요?


아니 이왕가 니들은 왜 그 노력을 안했답니까?


죽을 때 죽더라도 지들이 나서서 민중의 뜻을 모으고 그 잘난 민족혼을 결집 시킬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구심점이 바로 조선과 대한제국을 지배하던 이왕가 일당들 아닙니까?


아니 지들은 죽는게 무서워 감금당하고 협박당해서 어쩔 수 없었는데 도대체 그들에게 지배당하던 백성들에게 무엇을 근거로 노력하여 광복하라 합니까?


사회 밑바닥에서 노가하던 이봉창 같은 사람도 아무것도 해준게 없는 나라를 위해서 뭔가 해보겠다고 자기 목숨을 던지면서 의거를 하는데 난 어쩔수 없었다.


을사오적, 경술국적같은 역적들이 한거다.


난 이렇게 죽지만 니들은 노력해서 광복하라구요? 이게 말입니까?


여러분 이봉창, 윤봉길 이런 사람들이 폭탄을 들고 그런 일을 한다고 해서 진짜 조선이 해방되고 독립이 될거라고 생각하고 목숨을 던지는걸까요?

그게 좋게 이야기해서 의거지 그냥 목숨 버리러 가는 거잖아요?

그렇게 한다고 무엇인가가 크게 바뀔거라고 생각해하는게 아닙니다.


그러나, 본인들의 한몸을 불살라 투쟁함으로 그것이 조선 민중의 혼을 일깨우고 또 이후에도 다시 조국을 위해 목숨을 던질 또 다른 투사들을 나오게 하고 각성시키는 그러한 목적이 있는 겁니다.


경술국치 당시 10살이었고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아무것도 받은게 없는 이봉창 같은 사람도 조국을 위해 온몸을 불사르는데 조선의 지배자들이 볼모라 어쩔 수 없는 거 아니냐고 하는 사람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사람들입니까?

의친왕이 망명을 시도한 것, 아들 이우의 정체성을 위해 무조건 조선인과 혼인을 강행한 것, 겨우 이게 사실상 이왕가가 일본에 저항한 흔적입니다.

그러하기에 의친왕은 이왕가 중 그나마 좀 낫다고는 하지만 그 의친왕도 일본이 주는 돈으로 생활했고 30만원을 일시금으로 받았으며 해방될때까지 매달 12만엔씩 받아 먹었습니다.


여러분들에게 다시 묻고 싶습니다.


고종을,이왕가 일당들을 '어쩔 수 없었다'라고 비호하는 기준이 대체 뭡니까?


대체 이 당시 어쩔 수 있었던 사람들은 누구를 말하는겁니까?


이왕가 일당중 직접적으로 일본에 목숨 내놓고 저항하거나 왕공족의 지위를 거부한 사람이 정말 단 한명만 있었어도 그 사람은 대한민국에서 영웅으로 추앙 받았을 것이며 우리의 선조 중에,우리를 지배했던 자들 중에 그래도 이러한 기개를 가진 자가 있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었을 겁니다.


고종이 나라를 빼앗겼다?

 

아닙니다.


그는 나라를 팔았습니다.


그는 먼저 나라를 좀 먹었고 그를 따르던 백성들을 개 취급했으며 적이 주는 돈을 받아먹었고 또한 백성들을 착취하는 민씨일족들의 돈을 받아 먹었고 그들의 수 많은 악행을 묵인했습니다.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군인들에게 썩은 쌀과 모래를 주었고 자신의 백성들이 들고 일어나자 외국의 군대를 들여와 학살했습니다.


이것이 매국노가 아니라면 대체 누구를 매국노라 해야 합니까?


그는 고종이 아닙니다.


도쿠주노미야 이태왕


조선뿐 아니라 한반도의 매국노로서 암군이며 김일성 다음 가는 진정한 악당입니다.


다시는 누군가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하여 이 대한민국이 다시는 그러한 굴욕을 겪지 않기 위하여 진정으로 경계하고 반성해야하는 역사가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그게 일사오적일까요? 아니면 전제군주국가의 군주일까요?


우리 모두가 진정으로 생각해봐야할 문제입니다.


감사합니다.



영상출처: https://youtu.be/TuAmg_bXWww?si=pkXi5Nxm-P6A-bQO


일제강점이라는 말은 매국의 역사를 왜곡하는 거짓말입니다

 일제강점이라는 말은 매국의 역사를 왜곡하는 거짓말입니다. 최고의 매국노 '도쿠주노미야 이태왕'을 주축으로한 왕공족들이 어떻게 나라를 팔아먹었는지를 아주 핵심을 집어서 비판한 영상이 있어서 그 영상에 나오는 내용을 아래의 글로 옮겼습니다...